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
대한민국헌법에 꽤 특이한 조항이 하나 있다. 제67조 제2항이다. 이 항에는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거를 해서 선출하는데 그 선거에 있어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에서 다수표를 얻은 사람을 당선자로 한다는 것이다.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는데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를 가정했다. 절대 일어날 수 없다고 단언할 수야 없겠지만 상식을 뛰어넘는 황당한 가정이 아닐 수 없다. 그보다 득표 수가 같은 사람이 나올 가능성이 훨씬 높은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의회 선거, 자치단체장 선거에도 물론 이런 상황에 대비한 조항이 있기는 하다. 공직선거법은 이들 선거에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연장자를 당선자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48년 7월 17일 헌법을 제정, 공포한 이래 아홉 차례 헌법을 개정했고 1988년 2월 25일 시행된 현행 헌법이 열 번째 헌법이다. 1948년에 제정하고 1952년, 1954년, 1960년 6월, 1960년 11월, 1962년, 1969년, 1972년, 1980년과 1987년에 각각 개정되었는데 1948년, 1960년 6월, 1960년 11월, 1972년, 1987년 헌법에서는 간선이었고 1952년, 1954년, 1962년, 1969년, 1987년 헌법에서는 직선이었다.
살펴보니 1952년 제1차 개헌(발췌개헌) 때 대통령 직선제를 처음 헌법에 규정하였는데 그때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어 1954년, 1962년, 1969년 헌법에서도 이 '최고득표자가 2인이상인 때에는'은 그대로였고 현행 헌법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1952년 1차 개헌에 대해 네이버의 한 백과사전은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1952년 7월 4일 경찰과 군대가 국회 의사당을 포위한 가운데 기립 방식으로 투표하여 참석 국회의원 163명, 찬성 163명으로 발췌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계엄령을 선포한 후 대통령 직선제에 의해 이승만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1952년 7월은 한국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였다. 언제 포성이 멈출지 알 수 없는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초대 대통령의 임기 만료를 불과 며칠 남겨 놓고 헌법은 부랴부랴 개정되었다. 더구나 계엄령까지 선포되어 있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만들어진 헌법 조항이 지금까지 그대로다. 국민이 직접 투표를 하더라도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가 왜 없겠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되묻고 싶다.
그럴 경우 '국회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고 제67조 제2항은 규정하고 있는데 그 공개회의에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가 생긴다면 어떻게 할 건가? 거기에 대한 규정은 왜 헌법에 없는가? 국민 직접 투표에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보다 국회에서의 투표에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가 훨씬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법은 상식에 기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헌법 제67조 제2항은 도무지 상식에 맞지 않는다.
헌법 제67조 제2항의 '최고득표자가 2인이상인 때에는'은 법조계의 보수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 생각된다. 민법, 상법, 형법 등에 남아 있는 숱한 비문(非文)이 요지부동으로 고쳐지지 않고 있는 이유를 이해하고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