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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May 07. 2023

어색한 법조문

법조문은 간결함이 특징이다. 군더더기가 없다. 법조문은 친절하지 않다. 대단히 압축적이다. 또한 사용된 단어의 의미가 일상적이지 않다.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쓰는 신청, 결정, 청구 같은 말이 법조문에서도 쓰이지만 법조문에 나오는 이런 말은 엄격하게 정의되어 있어 일상생활에서의 뜻과 사뭇 다르다. 


법조문의 이런 특징은 한국어에만 있는 현상은 아니다. 영어 법조문을 본 적이 있는데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용된 단어가 그랬고 문장 또한 뭔가 일상언어의 문장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법조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조문이 아무리 일상언어와 다른 특성이 있다 해도 법조문 역시 한국어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한국어의 문법을 지켜야 하고 한국어다워야 한다. 그런데 다음 법조문을 보자. 상법 제572조와 제575조다.


제572조(소수사원에 의한 총회소집청구)

②전항의 규정은 정관으로 다른 정함을 할 수 있다.


제575조(사원의 의결권) 

각 사원은 출자1좌마다 1개의 의결권을 가진다. 그러나 정관으로 의결권의 수에 관하여 다른 정함을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들 표현이 선을 넘었다고 본다. 아무리 법조문이 법조문만의 특성이 있다 해도 한국어 문장다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정함을 할 수 있다'가 도대체 무슨 말인가. '달리 정할 수 있다'와 어떻게 다른가. '달리 정할 수 있다'고 하면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데 '다른 정함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이게 무슨 뜻인가 싶어 한 번 더 읽게 만들지 않는가.


'다른 정함을 할 수 있다'는 비문법적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비문법적이라는 견해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일부러 이해하기 어렵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럴 이유가 없다. '달리 정할 수 있다'고 하면 간명하다. 


우리 법률 조문에는 이렇게 고약한 표현이 곳곳에 있다. '달리 정할 수 있다'고 해도 조문에 사용된 '의결권, 정관' 같은 말이 법률 용어기 때문에 조문의 해석이 쉽지 않은데 '다른 정함을 할 수 있다'처럼 괴상한 표현마저 들어 있어 조문의 뜻을 파악하기가 더욱 어렵다. 이런 표현은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법률가들에게도 불편할 텐데 왜 고치지 않고 그냥 쓰고 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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