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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May 14. 2023

1박 2일 자전거 여행

홍천강 따라서

영종도-무의도 자전거 캠핑을 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이번엔 미뤄뒀던 홍천강 자전거 여행에 나섰다. 홍천강 강변에서 친구들과 캠핑을 한 적은 몇 번 있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본 적은 없었으니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드디어 실행에 옮길 때가 왔다. 5월 중순이니 춥지도 덥지도 않아 딱 좋다. 더구나 날씨까지 맑았다. 가볍게 흥분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강변역에서 내려 동서울터미널에서 홍천행 버스를 탔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버스 짐칸에 실어 보는데 직원으로부터 핀잔을 받았다. 꺼내서 반대편에 실으라고. 그렇다. 손님들 가방 같은 짐 싣는 자리에 자전거로 꽉 채웠으니 핀잔 들어 마땅하다. 


인터넷에는 1시간 걸린다고 돼 있는데 실제론 2시간 걸렸다. 춘천 방향 고속도로는 거의 주차장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가평휴게소 부근에서야 비로소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홍천터미널에서 내려 편의점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많은 사람들이 벽을 보고 자리에 앉아 간단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자리에 무선 충전기가 있어 올려 놓았는데 10여 분 뒤 나올 때 보니 전혀 충전이 되지 않았다. 웬 일일까.


12시 정각, 홍천터미널을 출발했다. 춘천 방향으로 페달을 밟기 시작하는데 처음부터 바로 아주 가파른 고개가 나오지 뭔가. 지도를 보니 패명산 자락이었다. 돌에 'SINCE 1895. 5. 00 북방면'이라 새겨져 있었다. 갑오개혁 무렵에 행정구역 개편이 있었던 모양이다. 홍천군 북방면에 들어선 것이다. 오르막은 힘들었어도 내리막은 아주 신이 났다. 이런 맛에 힘들어도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북방면 행정복지센터 부근을 지나 화계초교 앞 로터리에서 돌아 홍천강 위로 난 다리를 건너니 아주 짧은 세찬 고개가 있었고 그걸 오르니 웬 일인가! 차로와 완전히 차단된 멋진 자전거 전용도로가 나 있었다. 그러나 그 훌륭한 자전거 도로는 겨우 2km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다시 일반 자동차 도로가 나타났고 갓길로 조심해서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도 강촌에 이를 때까지 자전거 전용 도로는 없었다. 짧았던 행복이었다.


내리막을 달려 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계속 내리막, 굴지리에서 좌회전해서 팔봉산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길은 평탄했다. 굴지유원지 부근 길가에 쉼터가 있길래 처음으로 그곳에서 쉬었다. 


홍천강은 북한강의 지류이다
쉼터가 있어 쉬었다


그 후로도 한동안 이렇다 할 언덕 없이 홍천강 강변 따라 편안히 달릴 수 있었는데 차들도 거의 없으니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다. 그러나 평온은 깨졌다. 삼거리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꺾자마자 상상도 못할 가파른 언덕이 나타났다. 포장이 돼 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무조건 내려서 끌고 가야 할 센 경사였다. 도전해 보기로 했다. 내리지 않고 타고 올라가기로. 다행히 그리 길지 않아서 언덕까지 오르는 데 성공은 했는데 숨이 얼마나 가빴는지 모른다. 헥헥... 마침 언덕 위 길가에 쉼터가 세워져 있어 옳다꾸나 하고 쉬었다. 근처에는 등산로 입구가 있었다. 금학산 등산로였다.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내리막에서 내려오니 남노일리였는데 벌써부터 곳곳에 펜션이다. 홍천강 위에 놓인 고주암교와 위안터교를 차례로 지났다. 남노일리를 지나 노일리에 들어섰다. 이젠 홍천강 물가에 수없이 많은 차들이 캠핑을 즐기러 나와 있는 게 내려다보인다. 나도 전에 이곳에서 친구들과 1박 하며 보낸 적이 있다. 그때 일이 떠올랐다. 


노일리 지나 북노일교를 건넜을 때 삼거리가 나타났는데 아무런 이정표가 없다. 어디로 가란 말인가. 삼거리에 이정표가 없다니!! 다행히 예전과 달리 지금은 스마트폰을 꺼내 지도 앱을 켜면 현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왼쪽으로 가야 팔봉산이 나오기에 왼쪽으로 꺾었다. 길이 갑자기 좁아졌다. 중앙선 없는 도로가 한동안 계속됐다. 그리고 팔봉1교를 건너고 중실교도 건넜다. 제법 거리가 번화해졌다. 미리 예습해둔 대로 한치골길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길이 최단코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아니다 싶었다. 굉장히 긴 오르막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아 바로 뒤돌아섰다. 좀 멀지만 평탄해 보이는 길로 가는 게 낫다 싶어서였다.


팔봉강변길이었는데 처음에는 그 판단이 맞았다. 길은 평탄했고 기어를 최대로 낮춰도 얼마나 신나게 자전거가 나가는지 몰랐다. 씽씽 달렸다. 그리고 길 오른편으로 기괴한 건물을 보았다. 산기슭에 엄청나게 큰 성 같은 건물이 있었으니 펜션처럼 보였는데 왠지 썰렁해 보였다. 지금 영업 중인지 그렇지 않은지 짐작할 수 없었다. 누군지 지을 때 참 대단하게 지었다. 무조건 커야만 좋은 건 아니다. 기괴해 보일 수 있다.


평탄한 길이 곧 끝나고 갑자기 길이 좁아지고 꼬불꼬불해지더니 경사가 여간 가파르지 않다. 이곳도 역시 산을 넘어야 했다. 기를 쓰고 좁은 길을 페달질해서 올라갔다. 맞은편에서 여러 대의 오토바이가 지나갔는데 어떤 라이더는 내게 인사를 건네 왔다. 가볍게 답례했다. 그리고 고개를 넘으니 강이 내려다보이면서 별세상이 펼쳐졌다. 참 예쁘게도 단장한 펜션, 카페가 점점이 박혀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곧 삼거리가 나왔다. 처음에 가려고 했던 길로 갔다면 만났을 삼거리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팔봉산 등산로 입구가 나타났다.


팔봉산 입구다. 입장료가 있다.
코스가 다양하다. 시간과 체력에 맞춰 골라 가면 된다.
옛 지도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용문산에서 그리 멀지 않게 그려져 있다. 참 정교하다.

시간이 3시가 좀 지났다. 팔봉산 안내소에서는 입장료를 받고 있었고 6시까지 하산해야 한다고 돼 있었다. 이젠 사찰도 입장료를 받지 않는데 산에서 입장료를 받다니 참 특이하다. 일단 통과하고 근처에 있는 팔봉산관광지 주차장쪽으로 갔다. 음료수도 사 먹고 주변을 파악했다. 곳곳에 주차장 내 야영 금지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이곳에 텐트 칠 곳은 없다. 저녁이 되려면 시간이 널널하고 할 수 없이 다시 등산로 입구로 향했다. 이미 오늘 입장이 끝났다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그 앞을 얼쩡거리니 어디까지 가느냐고 직원인 듯한 이가 물으면서 2봉까지만 갔다 오려면 다녀 오라고 했다. 그렇게 하겠다 하고 자전거를 묶어두고 팔봉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로엔 사람이 드물게 보일 뿐이었다.


1봉으로 향하는 길은 비교적 쉬웠다. 초입부터 웬 관중()이 그리도 많은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히 관중 천국이었다. 등산로엔 돌이 많아서 운동화를 신고 온 나로선 좀 힘들었다. 그러나 견딜만했다. 7부 능선쯤 올랐을까. 부시럭 소리가 들렸다. 새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었다. 


팔봉산은 양치식물의 보고였다
어미새인 모양이다
아기새. 생후 며칠 됐을까. 막 났을까.


꿩인 듯싶은데 왜 날지 않고 걸어서 왔다갔다 할까. 곧 이유를 알게 됐다. 아기새가 아장아장 걷고 있었다. 어미가 아가를 보호하다가 인기척을 만난 게 아니었을까. 산을 오르다 말고 나는 새 촬영에 정신이 없었다. 흥미로운 장면이었으니까. 


정상 좀 못 미쳐서 내려다보았다


40분쯤 올랐을 것이다. 거의 정상에 가까워졌다. 1봉은 너무 빡세서 포기했다. 등산화도 없이 하산 시간에 쫓기면서 그건 무리였으니까. 1봉을 지나치고 2봉에 올랐다. 8봉까지 있는 팔봉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 2봉이다. 327.4m라고 정상에 씌어 있었다. 327이면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나 사방 경관은 탁월했다. 정상엔 자그만 암자가 지어져 있었다. 이런 높은 곳에 어떻게 건축 자재를 운반해 왔을까. 이런 집을 볼 때마다 경탄하게 된다. 불공을 드리기 위한 도구가 자그만 암자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근처에는 조망을 즐길 수 있도록 쇠로 된 난간이 설치돼 있었는데 5인 이상 동시에 오르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홍천강이 산 사이로 흐른다


제2봉이 제일 높은데 327.4m
서쪽을 바라보고
제3봉이 건너다 보인다
제2봉엔 자그만 집이 두 채 지어져 있다.
3봉에 오른 등산객들


2봉 정상에서 경관을 즐기다가 3봉 방향으로 향했다. 멀어 보이던 3봉이었지만 이내 다다랐다. 3봉 또한 전망이 일품이었다. 2봉이 손에 잡힐 듯했다. 4봉 이하는 바위와 나무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은 2봉과 3봉 사이에 난 길로 했다. 꽤나 가파른 편이었다. 좀 위험하다 싶을 정도였다. 조심조심 걸음을 내디뎠다. 맨 끝 평탄한 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안심했다. 


오른쪽 끝에 2봉에 세워진 집이 보인다
홍천강이 또렷하다
3봉 정상석은 자연석이다
반곡리 밤벌오토캠핑장
4, 5, 6, 7, 8봉을 향해 찍었지만 낮아서 안 보인다
3봉에서 본 북쪽 모습
3봉에서 본 2봉
관중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3시 반쯤 오르기 시작했는데 하산하니 6시가 조금 못 되었다. 묶어둔 자전거 자물쇠를 풀어서 다시 주차장으로 향했다. 마트에서 라면과 물을 산 뒤 야영할 곳을 찾아 나섰다. 달리다 보면 좋은 자리가 있겠지 하며... 팔봉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았을 땐 반곡리 강변이 너무나 야영하기 좋아 보였는데 정작 자전거를 타고 가보니 온통 사유지 표시다. 예약된 사람 아니면 들어갈 수 없음이 분명했다. 괜히 들어가서 텐트를 쳤다가 쫓겨나는 수모를 당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 모험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안전한 곳을 찾기로 했다. 반곡리 밤벌캠핑장은 통과하고 계속 달리다 보니 반곡교도 건넜고 번화한 서면 소재지에 이르렀다. 초등학교, 행정복지센터, 우체국 등이 나타났지만 텐트 칠 곳은 아니었다. 계속 더 달렸다. 


어라. 두미교, 구곡1교도 지나니 어느새 개야리다. 더더욱 텐트 칠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고 한덕교 부근에 이르렀을 때 강변에 새카맣게 차들이 캠핑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여기야. 이곳에서 찾아야지' 싶었다. 한덕교를 건너니 춘천시 남면 한덕리고 관광객들이 많다 보니 마트도 여러 곳이다. 강변으로 내려가봐야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야영하기 적당치 않아 마을 부근에서 찾기로 했는데 마침 길에서 좀 떨어진 곳에 버려진 집이 있고 거기 평지가 있어 그곳에 눌러 앉기로 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폐가 앞에 자리를 잡았다

수도 없이 많이 쳐봤으니 텐트를 치는 건 익숙하다. 그리고 라면을 끓여서 먹었다. 집에서 갖고 온 삶은 계란도 먹었다. 하루 종일 비 한 방울 안 내렸는데 밤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큰 비는 아니었다. 조용한 시골 마을 한 귀퉁이에서 하룻밤을 잘 보냈다.


눈을 떠 보니 이미 밖이 환하다. 겨우 6시 좀 넘었을 뿐인데... 텐트를 걷은 뒤 라면을 끓여서 먹고 짐을 챙겨서 강촌을 향했다. 모곡2교를 건너 우회전해서 얼마간 달리니 모곡삼거리였고 왼쪽으로 가면 설악면이고 직진하면 강촌, 춘천 방면이다. 모곡삼거리를 지나서 얼마 안 가 씨유가 나타났다. 따뜻한 차가 생각나 그리로 들어갔다. 뜨거운 캔커피를 사서 마셨다. 그런데 밖에 흥미로운 시설물이 눈에 띄었다. 씨유 휴게실이 별도로 밖에 지어져 있었다. 거기서 좀 쉬어야겠다 싶어 이번에는 기계에서 나오는 커피를 뽑아 들고 휴게소로 들어갔다. 꽤 너른 실내에는 난방기구도 있고 흔들그네도 있었다. 휴식하기에 이만한 데가 또 있겠나.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젠 강촌 가는 일만 남았다. 15km 정도 남았을 것이다.


긴 언덕이 시작됐는데 길이만 길었을 뿐 경사는 완만한 편이어서 꾸준히 밟으니 언덕에 다다랐고 내리막은 쏜살같이 달려 내려왔다. 내리막이 거의 2km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싶다. 더구나 일요일 아침이니 차들도 거의 없어 아주 신나는 질주였다. 내리막이 다 끝났을 때 홍천강 위에 다리가 나타났다. 충의교였다. 이 다리를 건너서부터는 춘천시 남면이다. 그리고 전날 시외버스를 타고 가다 창밖으로 보았던 기막힌 정경이 바로 그곳이었다. 소남이섬 부근의 마곡유원지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다음에 한번 와야지 하는 마음만 먹고 충의교를 건너 강촌 방향으로 향했다.


강촌까지 남은 거리가 점점 짧아졌다. 이제 7~8k 남았을까. 마지막 언덕이 기다리고 있었다. 춘천시 남면 후동리 소주고개다. 이 역시 좀 길 뿐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무리 없이 올랐다. 더구나 끝엔 터널이었으니 차가 지나갈 때 귀가 찢어질 듯 시끄러웠을 뿐 평탄해서 힘들지 않았다. 소주터널을 나와 길고 긴 내리막을 차들과 거의 맞먹는 속도로 내려왔다. 남산면 창촌리, 방곡리를 지나 강촌리에 이르렀다. 드디어 강촌에 다다른 것이다. 아침에 25km 정도 달려 불과 9시에 강촌에 왔다. 


강촌 하면 생각나는 음식점이 있었다. 7~8년 전에 인제의 요양병원에 입원한 친구 문병을 마치고 친구들이 서울로 돌아오며 들른 강촌의 맵기로 유명한 짬뽕집이다. 오랜만에 왔으니 거기 한번 가볼까 싶어 거리를 두리번거렸는데 이내 눈에 띄었다. 들어가서 뚝배기짬뽕을 주문하고 기다리니 부글부글 끓는 짬뽕이 뚝배기에 담겨 나왔다. 홍합이 참 많기도 하다. 면이 잠시 뒤 따로 나왔다. 한 그릇 먹는 데 꽤 시간이 걸린 듯하다. 국물만 남기고 깨끗이 비웠다.



근처 강촌역으로 갔다. 청량리행 전철이 곧 도착해서 열차에 올랐다. 1박 2일의 자전거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홍천강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려보기는 처음이었다. 한강보다는 북한강이, 북한강보다는 홍천강이 작다. 작으니 친근감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한강, 북한강에는 강변 캠핑이 안 되지만 홍천강은 캠핑 낙원이다. 근처에 펜션도 즐비하다. 무엇보다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 홍천강 중간에 있는 팔봉산은 참으로 절묘한 산이다. 높지 않지만 결코 얕봐선 안 된다. 차가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홍천강 일원을 누볐으니 다녀온 길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청평호에서 북한강과 만나는 홍천강... 굽이굽이 휘도는 홍천강을 따라 즐거운 라이딩과 등산을 했다. 행복한 주말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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