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를 쓸 자리가 아닌데 '아니다'를 쓴 제31조
법률가든 일반인이든 법률 조문을 읽을 때 이 조문의 뜻이 무엇일지를 생각하고 읽는다. 이 조문은 무엇을 규정한 조문인가만 생각하는 듯하다. 어떤 조문이든지 의미가 있고 무언가를 규범으로 정해 놓고 있다. 민법 제31조는 어떤가. 다음과 같다.
사람은 자연인이고 이에 반해 사람 아닌 권리, 의무의 주체로 민법은 법인을 인정한다. 이 짧은 문장을 읽고 대체로 사람들은 '이 조항이 법인은 법률에 따라서만 성립함을 말하는구나' 하고 넘어갈 것이다.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기만 하면 사람이고 그에 따라 권리, 의무의 주체가 되지만 법인은 법률이 정한 요건을 충족해야만 성립할 수 있구나 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않는 듯싶다.
그런데 말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아니다'라는 말은 'A는 B가 아니다'처럼 A라는 주어와 B라는 보어가 있어야 하는 말이다. 일테면 "나는 부자가 아니다."에서 보듯이 말이다. 예를 들어 "나는 아니다."나 "부자가 아니다."는 모두 비문이다. 앞 문장에서는 보어가 없고 뒤 문장에서는 주어가 없기 때문이다.
민법 제31조의 '법률의 규정에 의함이 아니면'에서는 보어인 '법률의 규정에 의함이'만 있을 뿐 주어가 없다. '법인'이 '아니다'의 주어일까? 만일 그렇다면 '법인은 법률의 규정에 의함이 아니다'가 말이 돼야 하는데 '법인은 법률의 규정에 의함이 아니다'는 말이 안 되는, 성립할 수 없는 문장이다. 요컨대 위 제31조에서 '아니다'는 쓰일 자리가 아닌데 쓰이는 바람에 문장이 비문이 되고 말았다.
민법 제31조 문장은 비문이다. 말이 안 되는 문장이다. 그럼 어떻게 썼어야 하나. 이렇게 써야 했다.
고쳐 쓴 문장은 단박에 이해되지만 현행 민법 제31조는 읽고 또 읽게 만든다. 아리송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이런 비문을 우리 대한민국은 민법 제정 65년이 지나도록 고치지 않고 있다. 법학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입법권자인 국회의원들은 뭘 하고 있나. 말이 그렇게 우습고 하찮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