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제정은 제3대 국회의 자랑이자 수치이다
국회박물관에는 제헌국회 이전인 일제강점기 시기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의 역사도 충실히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제헌국회부터 제21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국회가 걸어온 길을 여러 자료와 함께 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제3대 국회를 소개한 부분에 이르러 착잡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국회박물관은 제3대 국회를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틀린 말을 찾기는 어렵다. 있는 그대로 기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제3대 국회에서 민법 제정안이 상정되었고 통과까지 되었기 때문이다. '국민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민법을 제3대 국회가 제정했다. 제3대 국회의 자랑스런 역사다.
그러나 지금껏 시행되고 있는 민법의 모습은 어떠한가. 제2조 제1항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와 같은 일본어 번역 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조문이 제3대 국회에서 만들어졌고 제77조 제2항 "사단법인은 사원이 없게 되거나 총회의 결의로도 해산한다." 같은 실로 어이없는 비문이 이때 제정되었다.
제142조 "취소할 수 있는 법률행위의 상대방이 확정한 경우에는 그 취소는 그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하여야 한다."나 제162조 제1항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같은 엉터리 문장도 제3대 국회에서 민법을 제정할 때 만들어진 표현으로 지금까지도 그대로다.
제3대 국회는 1954년부터 1958년까지 존재했다. 민법 제정안은 1954년 10월 제3대 국회에 제출되어 1957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1950년대의 우리나라가 얼마나 엉성한 나라였는지를 위 조문들이 생생히 보여준다.
그런데 1950년대는 6.25 전쟁 후의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시대여서 그런 엉성한 민법이 제정되었다고 치자. 제4대 국회부터 지금의 제21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무려 65년이 지나는 동안 국회는 무엇을 했나. 이런 엉터리 문장이 곳곳에 남아 있는 민법을 고치려고 하는 국회의원들이 아무도 없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불가사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