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문은 문법을 어겨도 그만일까
민법은 법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지 않고는 물권을 마음대로 창설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물권으로 점유권, 소유권, 지상권, 지역권, 전세권, 유치권, 질권, 저당권 등 여덟 가지를 두고 있다. 물권이 민법의 제2편인데 점유권을 비롯한 각 물권이 제2장부터 제9장까지 하나씩 장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점유권만 제외하고 각 장의 첫 조에서 그 물권이 어떤 권리인지를 규정하고 있다. 그 조항들만 모아 보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이 7개 조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일곱 가지 물권 중에서 유독 지상권과 지역권의 내용을 규정할 때만 '사용하는 권리', '이용하는 권리'라고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다른 다섯 가지 물권을 규정할 때는 '처분할 권리', '우선변제를 받을 권리', '유치할 권리'라 하면서 지상권과 지역권의 경우에만 '사용하는 권리', '이용하는 권리'라고 하는가.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 있을 리 없다. '권리'는 '~할 권리'로 쓰이지 '~하는 권리'나 '~한 권리'란 말은 없다. 틀린 말이다. 그런데 틀린 말이 제279조와 제291조에 쓰였다.
1958년에 민법이 제정될 때부터 이랬다. 제정 당시는 어수선한 시대여서 실수가 있었다 치자. 1960년 시행 이래 지금까지 민법이 30여 차례 개정될 기회가 있었는데 왜 그때마다 그냥 지나쳤나. 아마 법조인들은 민법은 법조인만 무슨 뜻인지 알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그들은 '사용하는 권리', '이용하는 권리'라 조문에 씌어 있어도 '사용할 권리', '이용할 권리'라 이해하고 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필자는 법조인 아닌 일반 국민 입장에서 국어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민법에 들어 있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법조문은 문법을 마구 어겨도 그만일까. 아닐 것이다. 법조문은 법조인만 사용하지 않는다. 일반 국민도 사용할 권리가 있고 따라서 문법에 맞아야 한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