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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n 07. 2023

'사용하는 권리'가 무슨 말인가

법조문은 문법을 어겨도 그만일까

민법은 법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지 않고는 물권을 마음대로 창설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물권으로 점유권, 소유권, 지상권, 지역권, 전세권, 유치권, 질권, 저당권 등 여덟 가지를 두고 있다. 물권이 민법의 제2편인데 점유권을 비롯한 각 물권이 제2장부터 제9장까지 하나씩 장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점유권만 제외하고 각 장의 첫 조에서 그 물권이 어떤 권리인지를 규정하고 있다. 그 조항들만 모아 보면 다음과 같다.


제211조(소유권의 내용) 소유자는 법률의 범위내에서 그 소유물을 사용, 수익, 처분 권리가 있다.


제279조(지상권의 내용) 지상권자는 타인의 토지에 건물 기타 공작물이나 수목을 소유하기 위하여 그 토지를 사용하 권리가 있다.


제291조(지역권의 내용) 지역권자는 일정한 목적을 위하여 타인의 토지를 자기토지의 편익에 이용하 권리가 있다.


제303조(전세권의 내용) ①전세권자는 전세금을 지급하고 타인의 부동산을 점유하여 그 부동산의 용도에 좇아 사용ㆍ수익하며, 그 부동산 전부에 대하여 후순위권리자 기타 채권자보다 전세금의 우선변제를 받 권리가 있다.


제320조(유치권의 내용) ①타인의 물건 또는 유가증권을 점유한 자는 그 물건이나 유가증권에 관하여 생긴 채권이 변제기에 있는 경우에는 변제를 받을 때까지 그 물건 또는 유가증권을 유치 권리가 있다.


제329조(동산질권의 내용) 동산질권자는 채권의 담보로 채무자 또는 제삼자가 제공한 동산을 점유하고 그 동산에 대하여 다른 채권자보다 자기채권의 우선변제를 받 권리가 있다.


제356조(저당권의 내용) 저당권자는 채무자 또는 제삼자가 점유를 이전하지 아니하고 채무의 담보로 제공한 부동산에 대하여 다른 채권자보다 자기채권의 우선변제를 받 권리가 있다.


그런데 이 7개 조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일곱 가지 물권 중에서 유독 지상권과 지역권의 내용을 규정할 때만 '사용하 권리', '이용하 권리'라고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다른 다섯 가지 물권을 규정할 때는 '처분 권리', '우선변제를 받 권리', '유치 권리'라 하면서 지상권과 지역권의 경우에만 '사용하 권리', '이용하 권리'라고 하는가.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 있을 리 없다. '권리'는 '~ 권리'로 쓰이지 '~하 권리'나 '~ 권리'란 말은 없다. 틀린 말이다. 그런데 틀린 말이 제279조와 제291조에 쓰였다.


1958년에 민법이 제정될 때부터 이랬다. 제정 당시는 어수선한 시대여서 실수가 있었다 치자. 1960년 시행 이래 지금까지 민법이 30여 차례 개정될 기회가 있었는데 왜 그때마다 그냥 지나쳤나. 아마 법조인들은 민법은 법조인만 무슨 뜻인지 알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그들은 '사용하 권리', '이용하 권리'라 조문에 씌어 있어도 '사용 권리', '이용권리'라 이해하고 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필자는 법조인 아닌 일반 국민 입장에서 국어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민법에 들어 있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법조문은 문법을 마구 어겨도 그만일까. 아닐 것이다. 법조문은 법조인만 사용하지 않는다. 일반 국민도 사용할 권리가 있고 따라서  문법에 맞아야 한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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