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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n 10. 2023

비엔나협약?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관저에 한국의 제1야당 대표를 초청해 놓고 한바탕 한국정부를 비판하는 이야기를 했다. 미국을 따르지 말고 중국을 따르라고 협박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일이다. 아무리 외교관이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라 해도 상대국을 존중하는 태도를 버려서는 안 된다. 


당장 한국 외교부가 그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어떻게 대놓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그런데 이를 보도하는 한국 신문의 기사에 '비엔나협약' 위반이라는 말이 나왔다. 싱하이밍 대사의 언행이 비엔나협약 위반이라는 것이다.


비엔나협약이란 무엇인가? 1961년 4월 1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체결된 다자조약이다. 그 조약의 영어 이름이 Vienna Convention on Diplomatic Relations이다.  이걸 한국어로 번역하면 어떻게 되나. 외교관계에 대한 빈 협약이 바른 한국어일 것이다. 여기서 '바른'이란 '어문규범에 맞는'이란 뜻으로 해석하면 좋겠다. 그런데 '빈 협약'은 어디 가고 누구나 '비엔나협약'이라 한다. 신문이 그렇게 쓰니 대중도 따라서 그렇게 부를 수밖에.


한국어 비엔나는 영어 Vienna를 옮긴 것이다. 사실 영어 발음을 기준으로 하면 비에나비엔나가 아니다. 그럼에도 비엔나가 널리 쓰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어 발음[viena]이 아니라 스펠링(Vienna)에 이끌린 탓이다. 영어 발음은 n이 한 번만 발음되지 두 번 발음되지 않는다. 어떻든 비에나가 아니라 비엔나로 굳어져 버렸다. 관습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으니 아무리 비에나가 맞다고 외쳐 봐야 소용이 없다. 비엔나가 이겼다.


비에나는 아예 상대가 안 되고 도 이겨서 비엔나가 대세다. 비엔나협약, 비엔나커피, 비엔나소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 죽지 않았다. 빈소년합창단,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 등은 빈이지 비엔나가 아니다. 다 같은 오스트리아 도시에서 비롯된 말이지만 음악에서만큼은 빈이다. 


<베니스의 상인>은 영국의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 도시에 관해 쓴 희곡이다. 그러나 영어로 썼기에 The Merchant of Venice는 한국어로 <베니스의 상인>이지 <베네치아의 상인>이 아니다. 축구단 인터밀란도 밀라노에 있지만 인터밀라노가 아니다. AC밀란도 마찬가지. 영어를 누르고 꿋꿋이 버티고 있는 도시가 로마나폴리다. 영어로는 롬, 네이플스지만 이 두 도시들은 이탈리아어를 꿋꿋이 지키고 있다. 


국명도 현지어는 온데 간데 없고 영어가 승한 예가 많이 있다. 에스파냐는 스페인에 밀렸고 폴스카는 폴란드에, 단마르크는 덴마크에, 스베리예는 스웨덴에 밀려버렸다. 이것들도 엄밀히 말하면 영어 스펠링을 따르는 거지 영어 발음을 따르는 건 아니다. 영어 발음에 충실하자면 폴란드는 폴런드, 스웨덴은 스위든이라 해야 하니 말이다.


싱하이밍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까지 번졌다. 비엔나이나 같은 도시다. 영어로 Vienna이고 독일어로 Wien이다. 비엔나협약이라 하든 빈협약이라 하든 협약의 내용은 하나다. 조약이나 상업 관련할 때는 비엔나, 음악은 , 이런 이중구조 속에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하나 지적하고자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협약을 이렇게 올려 놓고 있다.


외교^관계^조약(外交關係條約)

분야『정치』

「001」외교 사절의 임무와 특권에 관한 국제 협약. 1961년 4월 빈에서 조인되었으며 외교 사절의 임명, 외교관의 면책 특권에 관하여 규정하였다.


사전 표제어가 비엔나협약도 아니고 빈협약도 아니다. 그냥 외교 관계 조약이다. 도시 이름을 쏙 뺐다. 현실과 대단히 동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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