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한' 맞춤법
같은 연합뉴스인데 6월 16일 기사에서는 등교길, 6월 13일 기사에서는 등굣길이라 했다. 국어사전을 찾으면 등굣길만 있고 등교길은 없는데 연합뉴스가 6월 16일 기사에서 등교길로 쓴 것은 실수일까, 의도적일까. 궁금하다. 궁금함을 풀지 못해 아쉽지만...
등교길이라 제목을 뽑은 기자는 국어사전에 등굣길로 돼 있음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알고도 등교길로 썼다면 국어사전을 따르지 않은 용기에 갈채를 보내고 싶고 모르고 그렇게 썼다면 그건 그것대로 잘한 일이지 탓할 일이 아니라 본다.
표준어 규정이라는 게 있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이 표준어라고 원칙을 삼고 있다. 한글 맞춤법에는 이와 비슷한 말이 없다. 그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게'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만 돼 있다. 이 어법이 문제다. 뭐가 어법인가.
필자는 비록 한글 맞춤법에 어법에 대해 명시적 정의가 나와 있지 않지만 이 어법에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이라는 의미가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표준어 규정에서처럼 말이다. 어법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사람들이 두루 쓰니까 어법이 된다. '시내물' 하지 않고 '시냇물'이라 적는 것은 한글 맞춤법 제40항(합성어를 이루는 뒷말이 된소리로 소리나면 사이시옷을 받쳐 적는다)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시냇물'이라 적는 게 자연스럽고 '시내물'이라 적는 것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해빛'이라 적지 않고 '햇빛'이라 적는 게 자연스럽듯이.
똑같은 논리로 등교길이 사람들에게 익숙한 표기이고 등굣길이 사람들에게 거슬리는 표기라면 등교길이 어법에 맞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의 국어사전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한글 맞춤법 제40항이 곧 어법이라고 간주한다. 그래서 국어사전 표제어로 등교길이 없고 등굣길만 있다. 등교길은 틀렸고 등굣길이 맞다는 것이다.
맞춤법이 먼저 있고 말이 그 뒤에 있는 게 아니다. 말에 따라 맞춤법을 정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맞춤법은 사람들이 쓰는 말을 왜곡했다. 햇빛이든 등굣길이든 다 사이시옷을 붙여야 한다고 돼 있다. 그걸 국어사전이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 결과 갯과, 솟과, 참나뭇과, 은행나뭇과 같은 말이 당당히 국어사전에 올라 있다. 정작 그 말을 주로 사용하는 생물학계에서는 단단히 이를 외면하고 개과, 소과, 참나무과, 은행나무과라고 하고 있는데 말이다. 해당 분야에서 한결같이 개과, 소과, 참나무과, 은행나무과라고 하는데 국어사전만 독야청청 갯과, 솟과, 참나뭇과, 은행나뭇과 하고 있으니 코미디와 다를 게 없다. 30년 넘게 이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연합뉴스가 등교길로 쓴 것은 신선하다. 맞춤법이 언중의 습관에 맞추어야 하나. 언중이 맞춤법에 맞추어 말을 해야 하나. 말이 있고 맞춤법이 있지 맞춤법이 있고 말이 있지 않다. 얼마 전 한 신문사 교열부장이 그 신문에 쓴 칼럼에서 과도한 사이시옷 적용에 대해 '무도한 맞춤법'이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어문규범을 준수하는 데 가장 앞장서는 전문가의 입에서까지 맞춤법이 무도하다는 말이 나왔다. 우리 맞춤법이 그런 실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