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밭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중 Jun 22. 2023

어휘 선택

베팅이라는 외래어

한 일간지의 주필이 쓴 칼럼을 읽고 내용에는 공감하면서도 제목만큼은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한국인 팔자를 고친 역사적 베팅'이라고 했는데 '베팅'은 영 아닌 것 같고 '팔자'도 그리 마땅해 보이지 않아서다. 필자는 외래어 사용에 대해 꽤 너그럽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는데 하지만 '베팅' 같은 외래어가 과연 이 칼럼의 제목에 적합한지는 의문이다.


베팅은 원래 도박에서 쓰는 말로 알고 있다. 여기에 걸까 저기에 걸까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려 있을 때 과감하게 그 중 한 곳에 걸면 그걸 베팅이라 한다. 잃으면 크게 손해지만 따게 되면 대단한 횡재를 한다. 요컨대 베팅은 선택을 가리킨다. 그런데 한국이 미국을 과연 선택했나.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미국에 지자 미군이 한반도 남쪽에 들어와 군정을 실시했다. 이게 어디 우리가 선택한 것인가? 


물론 그 후 한국은 미국과 관계를 공고히 하고 미국의 도움을 받아 성장했지 미국을 배척하지 않았다. 배척하지 않고 관계를 긴밀히 유지한 걸 베팅이라고 했을까. 그런데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까. 일테면 영세중립을 선언한다든지 말이다. 그런 건 한낱 상상에 불과할 뿐이고 1945년 이후 한국이 미국과 밀착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이룬 것은 거의 외길이나 다름없었다 본다. 여러 선택지 중에 하나를 고르는 베팅과는 거리가 멀다.


팔자라는 말도 별로 수긍이 가지 않는다. 팔자는 본래 개인에 대해 쓰는 말이다. 국가나 국민에게 팔자는 어울리지 않는다. 운명이 적절해 보인다. 주필이 칼럼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또한 공감도 하지만 제목의 언어에 대해서는 불편한 감이 있다. 최근 주한중국대사가 어쭙잖게 '중국에 베팅하라'고 해서 공분을 일으켰기에 되갚아주려 이런 제목을 뽑았겠구나 싶지만 잘된 제목 같지는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란스런 법조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