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발달한 IT 수준이 세계 일류다. 스마트폰으로 해결 안 되는 일이 뭐가 있을까 싶다. 주식 거래는 당연하고 비행기, 기차, 고속버스, 배 등 각종 교통기관의 표 예매를 다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다. 온갖 법령 정보가 스마트폰 안에서 다 검색이 된다. 찬탄을 금치 못하겠다.
법령 정보를 보자. 법제처가 구축해서 국민에게 제공하는 법령정보센터는 온갖 법령이 스마트폰으로 다 검색이 되는데 기본적으로 법령은 한글로 제공된다. 그런데 법률은 제정될 때 한자로 씌어진 법률이 있는가 하면 최근에 제정된 법률은 그 반대로 한글 전용이다. 그러나 법령정보센터에서는 한자로 씌어진 법률도 한글로 바꾸어서 보여준다. 법을 개정하지 않고도 한글로 바꾸어 제공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민법은 1958년에 제정된 오래된 법률로 한자어는 한자로 쓰인, 국한혼용 법률이었다. 요즘 인터넷뿐 아니라 종이책으로 제공되는 민법전도 한자를 한글로 바꾸어서 출판되고 있지만 그것은 편법일 뿐이다. 그래서 1118조에 이르는 방대한 민법은 한자 혼용이 된 조문이 훨씬 많지만 90년대 이후 새로 추가된 조문은 한글 전용이다. 그래서 문자 사용 면에서 우리 민법은 뒤죽박죽이다. 이미 언급했지만 편의상 한자 혼용 조문도 한글로 바꾸어 제시하기 때문에 마치 모든 조문이 한글 전용으로 바뀐 줄 알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이 점을 감안하고 제1060조를 보자. 현재 우리 민법 제1060조는 다음과 같다.
第1060條(遺言의 要式性) 遺言은 本法의 定한 方式에 依하지 아니하면 效力이 생하지 아니한다.
이 조문은 종이책이든 인터넷이든 한글로 바꾸어서 "유언은 본법의 정한 방식에 의하지 아니하면 효력이 생하지 아니한다."라고 돼 있는 게 보통인데 여기서 '생하지'란 말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첫째 드는 의문은 왜 1958년에 민법을 제정할 때 '生하지'라 하지 않고 '생하지'라 했는지 궁금하다. 분명 '생하지'의 '생'은 生일텐데 말이다. 그 다음에 드는 근본적인 의문은 '생하다'가 과연 사람들이 쓰는 말이냐는 것이다. 놀랍게도 국어사전에는 '생하다'가 올라 있고 '없던 것이 새로 있게 되다.'라 뜻풀이되어 있다. 국어사전에 있다는 것이 뜻밖인데 사람들이 '생하다'라는 말을 실제로 쓰는지는 대단히 의문스럽다. 60년 이상 한국어를 써온 필자는 '생하다'라는 말을 써보지도 않았고 들어보지도 못했다.
'효력이 생기지 않는다'라고 하면 알기 쉬운데 왜 '효력이 생하지 아니한다'라는 조문을 그대로 두고 있는지 참 희한하다. 이런 의문은 나만 느끼는 걸까. 필자는 매우 혼란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