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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07. 2023

반가운 '제출하다'

'접수하다'가 세상을 접수했는데...

알랭 들롱이 힘겹게 병마와 싸우고 있는 모양이다. 세계적인 미남 배우도 늙으면 어쩔 수 없다. 그를 곁에서 돌보고 있는 사람이 일본계 여성이라는데 그를 잘 보살피고 있지 않다며 알랭 들롱의 아들이 그녀를 고소했단다. 이를 보도한 한 신문 기사가 눈길을 끈다.


기사 내용이 아니라 기사에 사용된 표현 때문이다. '고소장을 검찰에 제출했다고 밝혔다'고 했다. 아마 외국 언론의 기사를 한국어로 번역했을 터인데 고소장을 검찰에 제출했다고 하니 여간 반갑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 한국 신문은 거의 십중팔구는 고소장을 접수했다고 하니까 말이다. 아직 접수하다제출하다를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제출하다가 살아 있다. 


원서고소장은 원래 제출하는 것이지 접수하는 게 아니건만 어느새 세상은 온통 원서와 고소장을 내는 것을 원서 접수, 고소장 접수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마당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하니 어찌 아니 반가운가. 이렇게 제출하다의 사용을 반기고 기뻐하지만 그렇다고 접수하다의 세력이 줄어들 것 같진 않다. 언어의 변화는 하루 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세월이 필요하다. 지금은 혼돈기다. 접수하다가 완전히 제출하다를 몰아냈을 때 말의 변화가 완성된다. 


그렇다고 제출하다라는 말이 그야말로 '완벽하게' 사라질까. 어떤 경우에든 제출하다는 쓰이지 않게 될까. 그건 또 아닐 것이다. 법안제출하고, 사표제출하고, 보고서제출하는 것까지도 접수하다가 대신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제출하다는 여전히 쓰일 것이다. 다만 사용 영역 일부를 접수하다에 내줄 뿐일 것이다.


말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씁쓸하다. 언중의 변덕을 가늠하기 어려워서다. 언어의 질서는 정연하지 않아 보인다. 혼란스럽다고 하는 게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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