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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10. 2023

기존처럼 '연 나이'로 표기합니다

번히 예상됐던 일


법률 분야 전문지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법률신문이 있다. 이 신문 7월 3일자 <알립니다> 난에 법률신문은 기존처럼 '연 나이'로 표기합니다라는 제목의 알림이 떴다. 6월 28일부터 '만 나이 통일법(행정기본법 및 민법)'이 시행되었지만 법률신문은 종전대로 연 나이를 쓰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분명히 할 것이 있다. 정부는 '만 나이 통일법'이 6월 28일부터 시행됐다고 했지만 그럼 기존 민법은 연 나이집에서 세는 나이를 쓰도록 규정하고 있었나? 천만에 말씀이다. 민법은 1958년 제정됐던 당시부터 연령 계산은 출생일을 산입하라고 해서 만 나이를 쓰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만 나이'라는 표현만 안 썼을 뿐 만 나이를 쓰도록 돼 있었다. 연 나이나 집 나이를 쓰라고는 민법 어디에도 돼 있지 않았다.


어쨌든 세상은 마치 이제까지는 만 나이를 쓰지 않았는데 6월 28일부터 만 나이를 쓰도록 법이 바뀐 줄 알고 있다. 혹세무민은 이런 걸 말한다. 그런데 정작 법률 분야에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신문이 대 놓고 만 나이를 쓰지 않고 연 나이를 계속 쓰겠다고 독자에게 알렸다. 


그럼 법률신문이 왜 이런 알림을 내면서까지 정부의 방침에 따르지 않겠다고 한 걸까? 가만 생각해 보면 법률신문의 이런 방침은 아주 당연한 것이고 번히 예상됐던 일이다. 왜냐하면 만 나이를 쓰려면 어떤 사람의 생일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신문기사에 언급되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데 일일이 다 생일을 알아야 나이를 적을 수 있다? 갑자기 전에는 없었던 엄청난 업무 부담이 새로 생기는 것이다. 아주 유명한 사람이야 생년월일을 알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이를 밝히기 위해 그 사람 본인이나 가족에게 연락을 해서 알아본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결국 신문으로서는 연 나이를 계속 쓰는 것밖에는 달리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이미 만 나이를 쓰기로 돼 있었던 민법을 '개정했다'고 말만 했을 뿐 청소년 보호법이나 병역법, 초.중등교육법 등은 연 나이를 적용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만 나이로 통일되지 않은 것이다. 이들 법이 연 나이를 쓰는 한 '만 나이 통일'은 그저 허울에 불과할 뿐이다. 


신식 교육이 시작된 지 100년이 훨씬 넘었다. 같은 학년이면 같은 나이라는 게 우리의 뿌리 깊은 인식이다. 동갑이 뭔가. 같은 나이라는 거 아닌가. 그런데 만 나이를 쓰는 순간 동갑이 무너진다. 같은 반 학생들은 한 살 많은 학생들과 한 살 적은 학생들로 나뉜다. 그것도 하루 하루 달라질 수 있다. 어느 날 생일을 맞는 학생은 그날부터 한 살 더 먹으니까 말이다.


애초에 "'집 나이', '한국 나이', '집에서 세는 나이'는 이제 쓰지 맙시다"에서 그쳤어야 했다. 연 나이까지 못 쓰게 할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연 나이를 적용하는 청소년 보호법이나 병역법, 초.중등교육법은 그대로 두지 않았나. 집 나이를 쓰지 말자면서 민법을 개정한 것은 번지수를 크게 잘못 짚은 것이었다. 기존 민법이 만 나이를 쓰도록 규정하고 있었는 데다가 집 나이를 쓰는 것은 수백, 수천 년 동안 내려온 민족의 전통 습속이지 법과는 무관했기 때문이다. 


만 나이연 나이는 그리 다른 게 아니다. 생일을 지났느냐 안 지났느냐를 따지는 차이밖에 없다. 그런데 연 나이조차도 쓰지 말고 만 나이만 쓰자고 한 것은 과했다. 당장 신문에서 반발이 나타났다. 말이 앞서면 안 된다. 되는 게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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