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속을 어기는 법조문
법조문을 읽다 보면 내용이 어렵기도 어렵지만 말이 이상하다 싶을 때가 종종 있다. 내용과 무관하게 언어 표현이 뭔가 잘못됐다 싶은 조문이 눈에 띈다. 상법 제476조와 제478조를 보자.
'사채의 모집이 완료한 때에는', '사채전액의 납입이 완료한 후가 아니면'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한국인이면 누구나 '완료하다'라는 말은 '~을 완료하다'로 쓰인다는 걸 안다. 그런데 이 조문들에서는 '완료한'이 쓰였는데 '~을'이 없다. '완료하다'는 타동사로서 목적어가 필요한 동사인데 자동사로 썼다. 이래도 되나?
이런 문법 파괴는 민법에서 수도 없이 나타나고 있다. 민법은 소멸시효에 대해 규정하면서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라는 표현을 남발하고 있는데 상법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다음은 상법 제487조다.
'완성하다'도 '완료하다'와 마찬가지로 목적어가 있어야 하는 타동사다. 그런데 '소멸시효가 완성한다'고 했다. '완성하다'를 자동사로 사용한 것이다. 누가 '완성하다'를 자동사로 써도 좋다고 했나. 위 예들에서 '완료한'은 '완료된'으로 '완성한다'는 '완성된다'라고 해야 비로소 문법에 맞는다. 그리고 의아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법조문이 제멋대로다. 국어의 규범과 질서를 태연히 어기고 있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다. 법일수록 약속을 잘 지켜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