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밭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중 Jul 17. 2023

제헌절을 맞아

대한민국헌법 전문은 이렇게 끝난다. "...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헌법 제정을 기리는 제헌절은 7월 17일인데 헌법에는 1948년 7월 12일에 헌법이 제정되었다 하니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사연은 이렇다. 법은 제정, 공포, 시행일이 다 다를 수 있다. 같은 날 이 셋이 다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이 셋이 날짜가 다 다른 경우도 있는 것이다. 셋 중 두 가지가 같은 경우도 있다. 대한민국헌법은 1948년 7월 12일에 국회를 통과했기에 제정은 7월 12일이다. 그러나 공포는 5일 뒤인 7월 17일에 했다. 시행은 공포와 동시에 했다.


1948년 7월 18일자 경향신문은 전날 있었던 헌법공포식 과정을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7월 17일 오전 10시 5분 중앙청 국회의사당에서 헌법 공포식이 시작되어 10시 25분에 식이 끝났다고 했다. 제헌 국회의원 전원과 외빈들이 참석했단다. 헌법에 대한 서명과 공포는 당시 이승만 국회의장이 했다. 미국측의 하지 중장과 딘 군정장관과 외교사절이 공포식을 지켜보았다. 서재필 박사와 3.1운동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오세창 옹도 참석했다. 고려교향악단이 연주했고 오세창 옹의 선창으로 '대한민국만세'와 '대한민국헌법만세'를 삼창하고 식은 끝났다. 


1948년 7월 17일 우리나라는 어땠나? 국회만 있었을 뿐 정부가 없었다. 대통령도, 부통령도, 장관도 없었다. 헌법에는 대통령을 국회에서 뽑기로 되어 있었고 사흘 뒤에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이미 신문에는 대통령에는 이승만, 부통령에는 이승만이 뽑힐 거라는 보도가 공공연히 나왔다. 어떻든 헌법이 공포됨으로써 나라의 중요한 기틀이 세워졌다. 같은 날 헌법과 함께 정부조직법도 공포되었다.


그로부터 꼭 75년이 지났다. 인구는 두 배 이상 늘었고 국력은 도무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1950년대에는 헌법 개정이 다반사다시피 했는데(1952년, 1954년 그리고 1960년에 두 번) 지금 헌법은 1987년에 개정되고 36년째 그대로다. 나라가 정치적으로 안정되었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여야의 다툼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골은 더욱 깊어진 게 아닌가 싶다. 협치는 말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흔했던 몸싸움, '동물국회' 같은 게 이젠 사라진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정치는 아주 조금씩만 발전하는 것 같다. 


헌법은 공기나 물 같은 것이다. 한 시도 없어서는 안 되지만 중요한 줄을 잘 모른다. 국민의 기본권이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 그 헌법이 75년 전 오늘 공포되었다. 온통 수해로 뒤숭숭하니 제헌절에 대한 관심도 느끼기 어렵다. 아쉬울 따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KBS영상실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