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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17. 2023

'다른 정함'

왜 법을 국민에게서 떼어 놓으려 하나

1962년에 제정된 상법은 935조까지 있는 방대한 법률이다. 민법 다음으로 분량이 많다. 국가의 중요한 기본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조문의 표현 중에 어색하게 느껴지는 표현이 꽤 있다. '다른 정함이 없으면', '다른 정함이 있는' 등에서처럼 '다른 정함'이란 말이 참 많이 나온다. 무려 18번이나 나온다. 


제562조(회사대표) ①이사는 회사를 대표한다.

②이사가 수인인 경우에 정관에 다른 정함이 없으면 사원총회에서 회사를 대표할 이사를 선정하여야 한다.


제564조(업무집행의 결정, 이사와 회사간의 거래) ①이사가 수인인 경우에 정관에 다른 정함이 없으면 회사의 업무집행, 지배인의 선임 또는 해임과 지점의 설치ㆍ이전 또는 폐지는 이사 과반수의 결의에 의하여야 한다. 


'다른 정함이 없으면'이나 '다른 정함이 있는'과 같은 말이 문법적으로 무조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말이 있는데 굳이 어색한 말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정적으로 어이없는 표현은 제572조제2항에 있다.


제572조(소수사원에 의한 총회소집청구) ①자본금 총액의 100분의 3 이상에 해당하는 출자좌수를 가진 사원은 회의의 목적사항과 소집의 이유를 기재한 서면을 이사에게 제출하여 총회의 소집을 청구할 수 있다. 

②전항의 규정은 정관으로 다른 정함을 할 수 있다.


"전항의 규정은 정관으로 다른 정함을 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 문장을 정상적인 한국어 문장이라 할 수 있을까. 왜 법조문은 이 따위 문장이어야 하나. "전항의 규정은 정관으로 달리 정할 수 있다."라고 못할 이유가 뭔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비틀어 만든 문장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왜 법을 국민에게서 떼어 놓으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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