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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20. 2023

'피고인의 명시한 의사' vs '피고인의 명시적 의사'

누더기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우리나라 형법과 형사소송법에는 '피고인의 명시한 의사'라는 말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법조인들에겐 익숙한 표현이겠지만 일반인들에겐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도무지 한국말 같지 않기 때문이다. '피고인의 명시한 의사'라니!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무리 어색한 말일지라도 입에 붙으면 차츰 이상한 느낌이 사라지고 급기야는 그게 편해지기까지 한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형법이 1953년에 제정되고 형사소송법이 1954년에 제정되어 무려 70년 가깝지만 지금도 이런 표현이 이들 법에 남아 있을 것이다. 제18조제2항은 그 한 예다.


제18조(기피의 원인과 신청권자) 

②변호인은 피고인의 명시 의사에 반하지 아니하는 때에 한하여 법관에 대한 기피를 신청할 수 있다.


그런데 1950년대에는 '피고인의 명시한 의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을지 모르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게 이상한 표현이란 걸 안다. 그리고 법은 자꾸 바뀐다. 개정하는 조항도 있고 새로 들어가는 조항도 생긴다. 다음 형사소송법 제33조제3항은 2020년 12월에 개정된 조항이다. '피고인의 명시한 의사'가 아니라 '피고인의 명시적 의사'라고 하였다. 요즘 사람들의 언어감각에는 '피고인의 명시적 의사'가 자연스러운 것이다.


제33조(국선변호인) 

③법원은 피고인의 나이ㆍ지능 및 교육 정도 등을 참작하여 권리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피고인의 명시 의사에 반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변호인을 선정하여야 한다. <개정 2020. 12. 8.>


법은 꾸준히 개정되고 있다. 1950년대에 만들어진, 지금 눈으로 보면 어색하고 고약한 표현은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위 제33조제3항처럼 새로 들어가거나 개정되는 조항에만 반듯한 표현이 사용되고 개정되지 않고 그대로인 조항에는 여전히 1950년대식 괴이한 표현이 남아 있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법조문이 누더기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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