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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23. 2023

생각 없이 살기

악법을 따르는 것은 잘하는 일이 아니다

올 여름 유난히 비가 많이 온다. 얼마 전엔 예천, 오송, 논산 등지에서 큰 비 피해가 발생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비가 많이 오니 농작물에도 영향이 미쳐 식탁 물가도 요동친다. 기사에 '채솟값 폭등'이란 말이 떴다. 가슴이 철렁한다. 물가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눈엔 채솟값이란 표기도 놀람에 한몫 한다.


기사는 왜 채솟값이라 했을까. 국어사전에 그렇게 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국어사전은 왜 채솟값이라 했을까. 한글 맞춤법 때문일 것이다. 한글 맞춤법 제30항은 합성어에서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가 나면 앞말에 사이시옷을 적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한글 맞춤법 제30항이 문제였다. 합성어에서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가 나면 앞말의 받침에 사이시옷을 넣는다가 아니라 넣을 수 있다고 했어야 했다. 안 넣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야 했는데 넣는다고 함으로써 별 희한한 일이 다 발생하기 시작했다. 솟과, 갯과, 참나뭇과 같은 괴상한 표기가 강요됐다. 그럼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 은 어떻게 설명하나? 왜 이들 말은 둘, 이라 국어사전에 올리지 않나. 전국 어딜 가도 둘렛길, 올렛길이라 한 데는 없기에 국어사전에 도저히 둘렛길, 올렛길이라 올릴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둘레길, 올레길을 보면 합성어에서 사이시옷은 넣는다가 아니라 넣을 수 있다고 했어야 했다. 


결정적인 잘못은 맞춤법을 제정한 이들이 아니라 맞춤법을 적용해 사전을 만드는 이들로부터 나왔다. 사이시옷은 합성어, 즉 단어에 넣어야 했는데 사이시옷을 단어가 아닌 구(句)에 넣어 버렸다. 채솟값 채소의 가격이란 뜻으로 구지 단어가 아니다. 따라서 애시당초 채솟값은 단어가 아니므로 사이시옷을 넣을 조건이 아니다. 채소 값일 뿐이다. 띄어써야 하는데 붙여쓰고는 거기에 사이시옷을 넣었다. 이게 중대한 과오가 아니고 뭔가. 생각 없이 국어사전을 만들어서 비롯된 일이다.


이렇게 한글 맞춤법 만든 이들, 국어사전 만든 이들이 오류를 범했어도 그걸 생각 없이 따른 언론사 기자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악법도 따라야 하니까 국어사전을 따랐을까. 악법에는 저항해야 한다. 악법은 무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생활이 편해진다. , 이 그걸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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