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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22. 2023

절도는 행위인가 사람인가

이상한 형법 조문

우리나라 형법은 1953년에 제정된 후 67년만인 2020년에 크게 손을 보았다. 개정 이유를 보면 '제정 당시의 어려운 한자어, 일본식 표현,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 등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고, 일상적인 언어 사용 규범에도 맞지 않아 일반 국민들이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어' 개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참 많은 조항이 일상적인 언어에 가깝게 바뀌었다. 잘된 일이다.


그런데 가만 뜯어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은 고쳐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조문도 있다. 예를 들면 제335조가 그렇다. 개정되기 전 제335조는 다음과 같았다.


제335조(준강도) 절도 재물의 탈환 항거하거나 체포를 면탈하거나 죄적을 인멸할 목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한 때에는 전2조의 예에 의한다.


이 조가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제335조(준강도) 절도 재물의 탈환 항거하거나 체포를 면탈하거나 범죄의 흔적을 인멸할 목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한 때에는 제333조 및 제334조의 예에 따른다.


'탈환 항거하거나'나 '죄적' 같은 말이 도무지 낯설어서 '탈환 항거하거나', '범죄의 흔적'으로 바뀌었다. 좀 더 알기 쉬워졌다. 그런데 바뀐 제335조는 과연 완전한가? 


개정되기 전이나 개정된 후나 주어는 똑같이 '절도'다. '절도가'와 호응하는 서술어는 '폭행 또는 협박한'이다. '절도'가 무엇인가? 훔치는 행위인가, 훔친 사람인가? 비록 국어사전에는 '남의 물건을 몰래 훔침. 또는 그런 사람.'이라 뜻풀이되어 있기는 하나 일상적인 언어에서 '절도' 하면 훔치는 행위를 가리키지 훔치는 '사람'을 가리키지 않는다. 훔치는 '사람'은 '절도범'이라고 한다. 따라서 일반 국민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 법을 개정했다면 주어도 '절도'를 '절도범'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았을까. 


도대체 '절도'를 '훔치는 사람'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 사람 강도야" 하는 말은 흔히 들어도 "저 사람 절도야." 하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이상한 법조문이 유지되는 데 국어사전이 한몫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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