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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바로 부르기

남을 얼마나 알고 사나

by 김세중

서울의 한 고등학교는 등산을 좋아하는 동기생들끼리 한 달에 한 번 등산을 한 지가 10여 년 된다. 벌써 백 수십 회 등산을 했다. 모임은 활기차고 밴드를 통해 연락과 소식을 주고받는다. 등산을 하고 나면 누군가가 후기를 올린다. 사진이 반드시 곁들여져 있음은 물론이다. 보통 많으면 20명 가량, 적을 때도 열 명은 산행을 함께한다. 물론 거의 빠짐 없이 참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따금 함께하는 이도 있다. 개인차가 있다.


필자도 같이 산에 가자는 권유를 여러 차례 받았지만 발이 살짝 불편해 보조를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아 사양해 왔다. 그런데 꼭 그 때문만은 아니다. 같이 산행하는 동기들 사이가 일견 친밀해 보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아니나다를까, 그렇게 생각한 게 일리 있었음을 알게 됐다.


이 등산 모임은 보통 열댓 명이 산행을 하는데 학창 시절 한 학년이 15반이나 됐기에 일행 가운데는 고등학교 3년 내내 한 번도 같은 반인 적이 없었던 동기들도 있다. 물론 고등학교 때는 같은 반인 적이 없었지만 산행을 자주 하다가 친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한 달에 한 번 십여 명이 어울려 산행하는 거로는 그다지 친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얼마 전 한 동기생이 동기회 전체 밴드에 산행 후기를 올렸다. 물론 같이 산에 간 동기생 이름이 죽 열거되었다. 그런데 한 사람 이름이 잘못됐다. 끝 글자를 잘못 썼다. 보통 남의 이름을 잘못 쓰는 건 굉장한 실례가 아닌가. 그런데 몇 날 며칠이 지나도록 그 이름은 고쳐지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됐다. 이름을 제대로 알고 있는데 타자를 잘못한 건지 아예 이름을 잘못 알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누구도 이름이 잘못된 걸 지적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름이 잘못 적힌 본인도 문제 제기를 안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후 얼마 뒤 새로운 산행이 있었고 역시 후기가 올라왔는데 지난 번에 이름이 잘못 올려진 사람이 역시 또 잘못 올려진 게 아닌가. 한 번 잘못 올려졌을 땐 타자 실수라 할 수 있겠지만 거듭 그렇게 나왔다면 글 올린 사람이 동기생의 이름을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닌가. 그리고 이번에도 그 동기생의 이름이 잘못됐음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들어서도 동기생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즐겁게 산행하는 것은 누가 봐도 보기 흐뭇한 일이다. 그러나 이름이 잘못 올려진 후기를 보면서 의아함,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디 이 동기 모임에서뿐이겠는가. 겉으론 꽤나 정겹고 친한 듯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 보면 깊이가 얕은 모임도 있을 것이다.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데 과연 친하다 할 수 있을까. 우린 도대체 다른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사나. 동창생의 이름이 언제 바로잡힐까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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