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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Mar 17. 2016

변한 말과 변하지 않은 말

140년 전 말과 지금 말을 비교하면

1880년에 간행된 <韓佛字典>은 표제어는 우리말이지만 뜻풀이가 프랑스어로 되어 있기에 국어사전이라고 할 수는 없고 '한프사전'이지만 당시의 우리말 단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표제어를 어떻게 수집했을까 무척 궁금하다.


<韓佛字典>에 실린 당시의 우리말 단어와 지금 우리말을 비교할 때 가장 먼저 놀라는 것은 지금은 안 쓰이는 말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태반의 말이 낯설다. 물론 낯선 말 중에서 일부는 비록 오늘날 잘 안 쓰일 뿐 지금 국어사전에 있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이 상당히 많다. '구활노(救活奴)'를 아는가. '구활로(救活路)'를 아는가. '병폐인(病廢人)'은? '무드럭지다'는? '느물느물하다'는? '고리장이'는? 모두 오늘날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프랑스어로 뜻풀이되어 있으니 그나마 뜻을 추측할 뿐이지 뜻과 용법을 잘 알기도 어렵다. 즉 140년 동안에 숱하게 많은 말이 사라졌다. 당시에는 쓰였으나 지금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것이다. 이는 말이란 끊임없이 사라지고 새로 만들어진다는 걸 보여준다.


말이 이렇게 사라지고 새로 생기는 일이 계속되고 있지만 변치 않고 남아 있는 말도 물론 있다. '옷, 음식, 집'이 그대로이듯 '어제, 그림, 물, 나무, 밥, 비누, 새벽, 신발, 손님, 태양, 지금, 지갑, 친구' 같은 말들이 다 140년 전에도 쓰이고 있었다. '약국, 인생, 일기, 외가, 위험하다, 우유, 운동하다, 유부녀, 학업, 현미경, 국가, 능력, 병원, 부부, 편지, 신랑, 신부, 등산하다, 도덕, 타인, 졔도, 직업, 진리, 지식, 죄인, 침실, 치통' 같은 말도  역시 쓰이고 있었다.




기초 어휘라는 게 있다. 이 세상 어떤 언어에든 있는 것이다. 인체의 부위 명칭, 친척 명칭, 일상생활에 관계되는 단어, 수사, 대명사 등이다. 역시 기초 어휘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초 어휘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싀아비'는 사라지고 '장인'으로 대체됐다. '얼골', '입슈얼', '눈셥'은 발음이 좀 달라져 '얼굴', '입술', '눈썹'이 됐다. '원승', '개고리', '귀드람이', '코키리', '벼록', '달팡이', '두더쥐' 따위도 발음이 조금씩 바뀌어 '원숭이', '개구리', '귀뚜라미', '코끼리', '벼룩', '달팽이', '두더지'가 됐다.


이런 발음 차이 말고 근본적으로 어휘가 달라진 것이 의식주에서 많다. 우리의 일상 생활이 지난 140 년 동안 엄청나게 서구화되었기 때문이다. 의복 관련 어휘라고 해야 <韓佛字典>에서 '옷, 옷고름, 옷고름, 헌옷, 기져귀, 바지, 버션, 져구리, 젹삼, 죡도리' 등을 찾을 수 있는데 '양복, 스커트, 원피스, 자켓, 스카프, 넥타이' 등은 모두 20세기에 들어와서 생긴 말들이다. 심지어 '양말, 장갑'조차도 <韓佛字典>에는 올라 있지 않다.


의복[衣]에 비해서 음식[食]은 전통을 이어받은 편이다. <韓佛字典>에 오른 음식 관련 어휘들 중에 지금도 쓰고 있는 말이 참 많다. '안쥬, 엿, 인졀미, 회, 육회, 깍둑이, 계란, 김치, 국, 국걸이, 국슈, 막걸니, 만두, 팟죽, 식혜, 슌대, 슐, 당면, 된장, 탕국, 통닭, 잡채, 졔육, 젹, 쥭, 찰밥, 찰떡, 쳥국쟝, 쳥쥬'는 지금도 쓰는 말 아닌가, '맥쥬'가 벌써 올라 있었음이 신기하고 오늘날의 순두부가 당시에 '슘두부'로 올라 있던 것이 주목을 끈다.


신체 부위 명칭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아갈이, 어금니, 얼골, 여드름, 허파, 허리, 혀, 간, 가삼, 겨드랑이, 궁둥이, 콩팟, 머리, 멱살, 목아지, 목구녕, 몸, 모발, 무릅, 눈셥, 눈동자, 방광, 발, 발굼치, 발톱, 뺨, 볽이쨕, 보조개, 팔, 손, 손가락, 슈염, 덧니, 등, 똥구녕, 졍슈리, 졋가삼, 졋꼭지, 쥬먹, 창자'는 지금 말과 똑같거나 별반 다르지 않다.


동식물명도 거의 그대로다. '악어, 잉어, 왜가리, 오리, 원앙새, 황새, 홍합, 호랑이, 개, 개고리, 가오리, 가마귀, 강아지, 갈치, 게, 기럭이, 광어, 고양이, 쐬꼬리, 곰, 곤츙, 공작이, 고래, 고등어, 꿩, 귀드람이, 구렁이, 구덕이, 망아지, 망둥이, 멸치, 민어, 모긔, 물고기, 나귀, 낙지, 나뷔, 너구리, 룡, 벅국새, 범, 병아리, 벼록, 비듥이, 부어이, 북어, 붕어, 파리, 표범, 사마귀, 살모사, 사슴, 샹어, 소, 송골매, 솔개, 숑츙이, 당나귀, 달팡이, 도롱룡, 두루미, 두더쥐, 톳기, 잠자리, 졔비, 젼어, 죠긔, 쥐, 쥰치' 등은 지금 쓰는 말과 똑같거나 조금 다르다.


'영산홍, 오미자, 오동나무, 향나무, 해당화, 호박, 호도, 감나무, 감자, 감초, 금낭화, 길경, 고사리, 고초, 구긔자, 국화, 귤, 미나리, 밀, 모과, 목화, 무우, 무화과, 낙화생, 나물, 능금, 백일홍, 백합, 복숑아, 봉션화, 보리, 팟, 사과, 쌀, 싸리나무, 사시나무, 생강, 씀바귀, 솔, 솔방울, 숑이, 쑥, 쑥갓, 대초, 단풍나무, 당근, 다스마, 더덕, 도라지, 도토리, 잣나무, 쟝미꼿, 참나무' 등도 마찬가지다.




말이 끊임없이 변하지만 기초 어휘는 잘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19세기 사람이 다시 환생을 한다 하더라도 의사소통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을 듯하다. "에서  입고 음식 먹고 잠 잔다"를 못 알아들을 리 없을 것이다. 말이 같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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