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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Mar 16. 2016

140년 전의 우리말

<한불자전>을 찾아서

옛날 우리 조상들은 어떤 말을 하고 살았을까? 우리가 지금 하는 말과 같은 말을 하고 살았을까? 아무도 조상들이 지금 말과 똑같은 말을 하고 살았으리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컴퓨터'니 '인터넷'이니 '흙수저'니 '남친', '수능' 같은 말이 예전엔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 말과 눈곱만큼도 공통점이 없을까? 그것 역시 아닐 것이다. 누구나 익히 들어봤을 훈민정음 어제서문만 봐도 지금 우리가 대충 뜻을 이해할만하지 않은가. 예전 말과 지금 말을 비교하면 변한 말도 있고 변하지 않은 말도 있다. 죽은 말도 있고 새로 생긴 말도 있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이 어떤 말을 썼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풍부하지 않다. 1443년 훈민정음이 탄생하기 전이야 말할 것도 없다. 한자로 표기된 향가에서 우리말의 흔적을 알 수 있으나 당시의 발음이 어땠는지 단어의 뜻은 또 어땠는지 그저 막연히 추측할 따름이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는 그 전과 비교해서는 훨씬 많은 문헌이 남아 있고 한글로 적혀 있어 발음도 비교적 선명하게 알 수 있다. 시대가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자료도 풍성해짐은 물론이다.


시기를 바짝 당겨서 19세기 후반에 우리말이 어땠는지 살펴보자. 당시의 말이 어땠는지를 알려주는 자료 중 하나가 1880년에 일본 요코하마에서 간행된 <韓佛字典>이다. 이 책은 사전이다. 한국어 어휘를 표제어로 하고 뜻풀이는 프랑스어로 했다. 그런데 한국어 표제어 바로 다음 프랑스어로 뜻풀이를 하기 전에 한자로 뜻을 보여주어 표제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 사전은 프랑스인 신부 리델(Ridel)이 한국사람의 도움을 받아 편찬하였다. 1880년 무렵의 한국어 어휘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이 사전을 열어서 당시의 한국어의 모습을 살펴보자.

 


우선 다행인 것은 지금 말과 같은 말이 꽤나 있다는 것이다. 의, 식, 주를 대표하는 '옷', '음식', '집'이 지금과 똑같다. 그뿐인가. '오리, 아기, 안방, 엿, 어렵다, 어리다, 외롭다, 인생, 외가, 어제, 여보, 이슬, 이제, 왼손잡이, 오후' 같은 말이 지금과 똑같다.



그러나 어디 똑같은 말만 있을까? 아니다. 조금 아니면 꽤나 다른 말이 상당히 많다. '입술'은 '입슈얼', '얼굴'은 '얼골'이었다. '이름'은 '일홈'이었다.


낱말의 꼴만 다른 것은 물론 아니었다. 당시의 시대상과 지금이 워낙 다르기에 시대상을 반영하는 낱말들이 많았다. 이 사전에 올라 있는 '아씨, 애첩, 하인' 같은 말은 요즘은 거의 쓰지 않는 말이다. 봉건시대에 흔히 썼던 말들이고 요즘은 쓸 일이 거의 없다. 당시에는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이 아주 많았던지 '안쟝다리', '안즌방이' 같은 말도 표제어에 많이 올라 있다.


1880년이면 2016년 기준으로 136년 전인데 당시에 이런 말이 벌써 있었구나 싶은 말들도 제법 많다. 한 예로 '운젼(運轉)하(아래아)다'라는 말이 올라 있다. 프랑스어로 transporter로 뜻풀이되어 있다. 당시에 자동차가 없었을 텐데 '운젼하다'가 어떤 뜻이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마차를 모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슨 뜻인지 말이다.

 


'입학하다', '학업', '학생', '학자' 같은 말도 이미 쓰이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학교'는 이 사전에 없고 '학당'이란 말이 올라 있다는 사실이다. '학교'는 그럼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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