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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Mar 25. 2016

<독립신문>의 말

독립신문 창간호(1896년 4월 7일)에서

<독립신문>이라는 신문


독립신문이라는 신문은 한국 역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이 신문은 왜 생겨났고 어떤 성격을 띠고 있었을까? 그리고 이 신문이 왜 중요할까?


독립신문에 대한 평가는 역사, 정치 등의 측면에서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말'의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독립신문에서 사용된 말이 당시의 한국어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독립신문은 잘 알려진 대로 1896년 4월 7일에 첫 호가 발행되었다. 처음 발행될 때에 일간신문이 아니었다. 주 3회(화, 목, 토) 발행되었다. 말하자면 격일신문이었다. 격일신문이던 것이 일간신문으로 바뀐 것은 약 2년 3개월 뒤인 1898년 7월 1일부터였다.


독립신문 발행의 주도자는 서재필이었다. 그는 미국에 있다가 귀국했는데 당시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독립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신문을 발행하는 취지는 첫 호인 1896년 4월 7일자 논설에 상세하게 밝혀 두었다. 아마 이 논설은 서재필이 직접 쓰지 않았을까.


독립신문 창간호 논설은 이 신문 발행의 취지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정부에서 하는 일을 백성에게 전하고 백성의 정세를 정부에 전할 것이니 피차에 유익할 것이다. 어느 당에도 편향되지 않을 것이요 상하귀천을 달리 대접하지 않을 것이다. 4면 중에서 마지막 4면은 영어로 기록할 것인데 외국 사람이 조선 사정을 잘 몰라 조선을 잘못 생각할까봐 그런 것이다. 외국 사정도 기록할 터인데 외국은 가지 못하더라도 조선 인민이 외국 사정도 알게 하기 위함이다. 한문을 쓰지 않고 국문으로만 쓰는 것은 상하귀천이 다 보게 함이다. 띄어쓰기를 하는 것은 글을 쉽게 알아보게 하기 위함이다. 남녀노소 상하귀천을 떠나 모두가 이 신문을 보면 새 지각과 새 학문이 생길 것이다. 우리 신문을 보면 조선 인민이 소견과 지혜가 진보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독립신문은 특정 계층을 위한 신문이 아님을 창간호에서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당시 한문이 판을 치던 세상에서 단 한 글자의 한자도 없이 순한글만을 썼던 점에서 독립신문은 가히 혁명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독립신문이 일간신문이 아니고 처음 약 2년간은 격일신문이었으며 4면 중에서 3면만 한글로 쓰인 한국어였고 제4면은 영어였음도 특이하다. 무엇보다도 이 신문을 보면 지각과 학문이 생길 것이고 소견과 지혜가 진보할 것이라고 했다. 소통을 위한 신문, 자각과 교양 함양을 위한 신문이 될 것임을 표방하였다.


독립신문은 광고, 논설, 관보, 외국통신, 잡보 그리고 상품광고와 배 시간표, 우체 시간표, 물가 등의 정보순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독립신문은의 제호는 당시 습관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여 있었으며 '문신닙독', 요즘 식으로 쓰면 '독닙신문'이었다. '문신닙독'에서 '문신립독'으로  바뀐 것은 제12호인 1896년 5월 2일부터이다.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 창간호의 제호는 '독닙신문'이었다.
1896년 5월 2일(12호)부터 '독립신문'으로 바뀌었다.



단어가 별로 다르지 않다


1896년 4월 7일에 발행된 독립신문 창간호의 기사는 비록 맞춤법이 지금과 다른 점이 있어 읽기에 불편한 점이 없지 않지만 사용된 단어들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모르는 말이 있어서 국어사전을 찾아보아야 할 경우가 거의 없다. 신기할 정도이다. 그러나 120년 전 신문인 만큼 뭐가 달라도 다른 점이 있기는 하다. 그런 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당시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했다. 그러나 표기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4월 7일 하루 신문에만도 '조선', '조션', '죠션', '됴션' 등이 섞여 쓰이고 있다. '대한제국'은 이듬해인 1897년에 세워지니 '죠션', '조션' 등으로 쓰이는 것은 당연했다.


'셔울'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었다. 이때의 '셔울'은 수도라는 뜻의 보통명사가 아니고 고유명사로서의 '서울'을 뜻하는 것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수도 서울과 대비되는 말로는 '젼국'이라는 말을 쓰고 있었으니 지금쓰는 '전국'과 같다.


'백셩'과 '인민'을 혼용해서 쓰고 있었다. 아마도 의미의 차이 없이 썼지 않나 추측된다.


'졍부'라는 말을 쓰고 있었다. 졍부에서 일하는 사람은 '관원'이라고 하였다.


'신문'을 쓰고 있었는데 신문을 발행한다고 하지 않고 '츌판'한다고 한 것은 지금과 용법이 다르다. 오늘날 '출판'은 서적에 대해서 쓰지 신문은 '출판'한다고 하지 않는다.


'국문'과 '언문'을 혼용해서 쓰고 있었다. '한문'에 반대되는 개념은 '죠션 국문'이었다. '본국 국문'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각국의 글을 '본국 국문'이라고 하였다. '죠션 국문'을 달리 '죠션글'이라고 쓴 사례도 있다.


'귀졀'과 '말마디'도 혼용해서 썼다. 띄어쓰기에 대한 설명에서 이 말들을 사용하였다.


창간호의 <논설>에서 사용된 단어들이 지금 말과 별로 다르지 않아 뜻밖이라고까지 할 정도였지만 <잡보>에서는 오늘날에 사용되지 않는 말이 적지 않이 나타나 시대가 다름을 실감케 한다. '슌검'과 '총슌'이 그런 예다. '슌검'이나 '총슌' 모두 신식 경찰 제도의 직위를 가리키는 말로 총슌이 슌검보다 상급 직위에 있었다. '탁지대문', '션혜쳥' 등은 당시의 행정 제도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니 지금과 다름은 물론이다.


'슌검'은 순경, '총슌'은 경찰 간부를 가리켰다.



국명


독립신문 창간호의 '외국통신'에는 여러 나라 이름이 나온다. 나라 이름만큼은 지금과 상당히 다르다. '아메리가 합즁국'은 물론 미국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날 신문에서 '미국'이란 말도 한번 나온다. '미국인민'이라는 표현이 쓰였다. '규바'는 지금의 쿠바를 가리킨다. '셔바나'는 지금의 스페인을 가리킨다. 그런데 '셔바나'라고 했다가 '셔반아'라 하기도 했다. '영국', '불난셔', '이탈니'가 쓰였다. '불난셔'는 프랑스, '이탈니'는 이탈리아를 가리킨다. 대륙명으로 '아프리가'는 지금의 '아프리카'다. '아라샤'는 지금의 러시아를 가리킨다. '일본'은 지금과 같고 청나라를 '쳥국'이라 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1896년의 한국어를 들여다보자. 독립신문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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