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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Apr 03. 2016

1896년의 한국어 풍경

1896년 4월 7일이 독립신문의 창간호가 발행된 날이다. 이 날 신문 4면 중 3면은 광고와 정보가 주로 실려 있다. '물건'이란 말이 자주 쓰이고 있고 '물가'는 아예 섹션 이름으로 쓰고 있다. 오늘날의 용법과 똑같다.

'물가' 정보를 보여주고 있다.


다른 점도 물론 있다. 오늘날 '서점' 또는 '책방'이라고 하는 말을 '책(아래아)젼'이라고 했다. 물론 '책전'이 오늘날의 국어사전에 올라 있기는 하다. 사람들이 잘 쓰지 않을 뿐이다.


'죵노 책젼'이란 말이 보인다


물가란에 무명, 베, 모시 등의 가격이 소개되어 있는데 시대상을 반영한다. 오늘날은 옷감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고 완제품을 사는 데 반해 당시에는 옷감을 샀던 것이다.


시간 읽는 법이 지금과 다르다. 독립신문 3면에 매일 나오는 '우쳬시간표'에 '오젼 칠시 십시 오후 일시 사시' 같이 적었다. 그런데 '우쳬시간표'에만 시를 읽을 때에 한자어인 '일, 이, 삼, ...'으로 읽었지 본문 기사에서는 '다삿 시', '열두 시'와 같이 순우리말로 읽었다. 왜 두 가지 방식이 공존했는지 이유가 분명치 않다.


한결같이 '일시, 사시, 구시, 십이시' 등으로 적고 있다. 그러나 아래 본문 기사에서는 '열두시, 다삿 시'라고 적고 있다.


1896년 4월 25일자 독립신문(제9호)은 논설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우선 '교육'을 시종일관 '교휵'이라고 적고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논설에서 '학교', '선생'과 같은 말을 쓰고 있으니 오늘날과 같다. 그런데 '학생'은 안 보이고 '학원'(學員), '학도' 같은 말을 쓰고 있는 점이 지금과 다르다.


'교휵'이라 쓰고 있다
'교휵하난'
'학생'이 아니라 '학원, 학도'라 하고 있다. 그러나 '교사, 학교'는 지금과 같다.


독립신문 1896년 5월 14일자 논설은 조선에 와 있는 외국인들이 비싼 이자를 받으며 조산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에 대해 문제를 삼았다. 이 논설에 사용된 단어들이 지금과 꽤 달라 흥미를 끈다. '변리, 변, 즁변, 경변, 길미, 취대하다' 같은 말이 그렇다. '변리, 변'은 이자를 말하고 '중변'은 과중한 이자, '경변'은 가벼운 이자를 말한다. '길미'는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갚는 돈을 말한다. '취대하다'는 돈을 꿔주거나 꿔 쓰는 것을 말한다.


1896년에 이미 '운동회', '애국가'라는 말이 쓰였다. 아래 기사가 그것을 보여 준다. '태극긔'라는 말도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운둥회', '애국가'


오늘날의 광화문 세종로 일대가 지금은 완벽한 평지지만 120년 전인 1896년에는 언덕이 있었던 모양이다. '황토말우'라는 지명이 그것을 말해준다. '황토말우'는 물론 '황토마루'이다. 황토마루에 전보국이 있었으니 오늘날 KT 사옥 부근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바로 그 자리였을 수도 있겠다. 지금 '황토마루'라는 지명은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부근 국립역사박물관 3층 카페 이름이 '황토마루'라니 지명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황토말우'는 요즘 표기로 '황토마루'인데 지금의 세종로 일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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