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문 분야 계간지에 써내야 하는 원고가 있다. 이번 호에는 '된소리 복권이 필요하다'라는 제목으로 길게 글을 써서 보냈다. 편집자로부터 아직 답장을 받지 못했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된소리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소주'를 '쏘주'나 '쐬주'라 발음하는 것은 나쁘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그런 발음은 점잖지 못한 발음이라 여겼다. 사실 된소리는 부드러운 소리는 아니다. 발음기관 어느 곳을 긴장시켜서 내는 소리다. 그런데 억센 소리라고 해서 뜻마저 나쁠까.
'된소리 복권이 필요하다'라는 글은 외래어 표기에서 된소리를 억제하지 말고 허용하자는 게 핵심 주장이다. 과연 외래어 표기에서 된소리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억제되어 왔다. '꼬냑', '꽁뜨'라고 흔히 발음해도 표기는 '코냑', '콩트'라 해야 한다고 주입되어 왔다. 프랑스의 수도는 '파리'로 적어야 하는데 발음은 '빠리'라 하는 사람이 참 많았다. 유명한 프랑스 작가 Camus도 '카뮈'보다는 '까뮈'라 하지 않는가. 프랑스의 고속철도 TGV는 '테제베'라 발음하는 사람이 많은가 '떼제베'라 발음하는 사람이 많은가? 하지만 '데까르뜨'나 '나뽈레옹'이라 발음하는 사람은 들어보지 못했으니 갈피를 잡기 어렵긴 하다.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의 무성 파열음 p, t, k는 국어의 된소리 ㅃ, ㄸ, ㄲ에 가깝지 ㅍ, ㅌ, ㅋ와는 아주 동떨어져 있다. 이와 달리 영어나 독일어의 p, t, k는 국어의 ㅍ, ㅌ, ㅋ와 가깝고 ㅃ, ㄸ, ㄲ와는 거리가 멀다. ㅃ, ㄸ, ㄲ에 가까운 언어는 ㅃ, ㄸ, ㄲ로 적고, ㅍ, ㅌ, ㅋ에 가까운 언어는 ㅍ, ㅌ, ㅋ로 적기로 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터인데 외래어 표기법은 p, t, k는 죄다 ㅍ, ㅌ, ㅋ로 적도록 규정했다.
이런 외래어 표기의 역사는 이미 1930년대 일제강점기 때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에서 정해진 것이었다. 최소한 8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리하게 거센소리로 '통일'한 바람에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왜 된소리에 가까운 언어의 소리를 거센소리로 적어야 하는지 의문을 품고 반발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TV 뉴스의 자막에는 '파리'라고 나오는데 현지 특파원의 발음은 '빠리에서 000이었습니다.'가 보통이었다. 홍세화 작가의 책은 아예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였다.
상품 이름에 이르러서는 더욱 자유분방했다. 된소리 금지는 지켜지지 않았다. 현대자동차의 Avante는 포르투갈어로 '전진하라'라는 뜻인데 한글로 '아반떼'지 '아반테'가 아니다. '쏘나타'지 '소나타'가 아니다. 된소리 금지는 먹혀들지 않았던 것이다.
된소리는 예사소리, 거센소리와 함께 자음에서 한 부류를 이룬다. 된소리를 회피하고 억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가장 유력한 이유는 표기의 편이성이었다. 무성 파열음을 거센소리로 적는 언어와 된소리로 적는 언어로 나누는 것 자체가 번거롭고 이를 따르는 일도 혼란과 불편을 초래한다는 생각 때문에 된소리를 아예 쓰지 않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나 국어에 멀쩡히 존재하는 소리를 못 쓰게 막는 것이 과연 온당했나.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썼는데 어떤 반응을 얻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된소리는 막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소리에 무슨 잘못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