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살인은 없었나
유튜브가 요즘 내게 던져주고 있는 영상들은 교도관, 형사, 검사 등에 관한 것이고 최근엔 거기에 더해 부검, 국과수 등에 관한 영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내가 도대체 어떤 특징을 보였길래 유튜브는 이런 것들을 자꾸만 내게 보라고 권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간에 덕분에 잘 모르고 있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어젠 집중적으로 부검에 관한 여러 다큐멘터리가 떴는데 그 중 몇 개를 보았다. 그러다 1995년에 있었던 치과의사 모녀 살해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무려 28년 전 일이지만 당시에 꽤나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사건이었다. 죽은 치과의사의 남편이 외과의사였는데 사건 당일 아침 7시에 자기 병원으로 출근을 했고 그 얼마 뒤인 9시쯤 자택 아파트에서 화재가 나고 사람들이 가보니 모녀가 죽어 있었다. 당연히 수사의 초점은 외과의사인 남편이 모녀를 죽이고 나서 7시에 출근했느냐, 그게 아니라 남편이 출근 후 누군가가 그 집에 들어와 모녀를 살해했느냐였다. 7시 전에 죽었다면 남편이 범인, 그 후에 죽었다면 제3자가 범인이었다.
죽은 치과의사에게 인테리어업자인 내연남이 있었다는데 그의 알리바이가 성립되었기에 수사당국은 남편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남편은 완강히 부인했지만 말이다. 검찰이 남편을 살인범으로 기소했고 1심은 사형을 선고했고 2심은 무죄, 대법원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다시 고등법원에서 심리하여 무죄가 선고되었고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어 8년만에 남편은 무죄로 풀려났다.
무죄가 확정되었지만 그것이 꼭 남편이 범인이 아니라는 건 아닌 모양이다. 증거가 없을 뿐이지... 그러나 나는 외과의사의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고 그가 아내와 딸을 죽인 사람이 아니란 나름의 심증을 확고하게 갖게 됐다. 그 말투, 표정에서 도저히 그럴 사람 같지 않았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일 뿐이고 그가 범인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사건의 경우 진범이 나중에 잡히지 않았을 뿐 어떤 살인범이 무기징역형을 살고 있는데 뒤늦게 진범이 잡혀 수십년 옥살이 끝에 풀려난 경우가 왕왕 있었다. 국내건 국외건. 심지어 살인범으로 몰려 사형을 당했는데 뒤늦게야 범인이 잡힌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수사당국의 태도이다. 그들은 왜 확실한 증거도 없는데 누군가를 법정에 세우고 단죄하려 하는 걸까. 그런데 거기까진 좋다. 왜 진범이 잡힌 후에, 아니면 진법이 잡히진 않았더라도 대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는데도 그간의 부당하고 무리한 수사에 대해 책임지지 않나. 뉘우치고 사과하고 피해자에 보상해야 하지 않나. 그랬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아니면 말고'란 말인가.
수사를 하다 보면 범인이 누군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수사기관은 어떡하든 범인을 색출해서 법정에 세우려 한다. 이젠 고문은 없어졌다지만 강압수사, 자백 강요까지 없어졌나. 그렇게 해서라도 범인을 만들어 처벌해야 하나? 수사기관으로서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을까봐 어떡하든 범인을 만들어 법정에 세우려는 걸까. 그런 수사당국의 무리수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인생이 파탄난 사람들은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나.
'사법살인'이 왕왕 있었다. 죄가 없는데 있다고 씌워서 처벌하는 걸 말한다. 지금은 없나 모르겠다. 앞으로 그런 일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수사시관의 과오에 대해 책임을 묻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하지 않나. 아니 수사기관이 무리한 수사와 이에 근거한 사법처리를 하지 않아도 되게끔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겠다. 그동안 억울한 사람이 참 많았을 것 같다. 1962년생으로 33세 때인 1995년에 아내와 딸을 잃고 살인범으로 몰려 8년이나 고생했던 외과의사, 지금 61세일 텐데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을지 내 맘이 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