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되면 중독된 줄 모른다
여러 차례 브런치에서 사이시옷 남발을 고발하고 걱정한 바가 있다. 그러나 끊이지 않는다. 오늘은 '중고찻값'이라는 말을 기사의 제목과 본문에서 보고 경악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다.
휘발윳값, 채솟값, 우윳값 같은 말이 언론 보도에서 자주 보이니 거기서 얻은 학습 효과임이 틀림없다. 휘발윳값, 채솟값, 우윳값 같은 말은 <우리말샘>이라는 오픈국어사전에 올라 있다. 국어사전에 올라 있으니 언론사에서는 당연히 그게 맞다 생각하고 기사에 썼을 것이고 이에 길들여진 기자들이 <우리말샘>에도 없지만 중고찻값을 기사 제목과 본문에 쓴 것이다.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 수 있다. 중고찻값이란 말이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 않지만 알아서 사이시옷을 붙인다. 붙여야 하는 줄 알고 말이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라. 이 세상 판매되는 모든 상품은 뒤에 '값'이란 말이 붙을 수 있는데 '값'이 붙어도 그게 한 단어라고? 그럼 땅콩값, 마늘값, 당근값, 버섯값, 양송이버섯값, 새송이버섯값, 토마토값, 바나나값, 버터값, 치즈값, 콜라값, 사이다값, 소다수값 등등이 다 단어라고?
'땅콩 값'은 '땅콩의 값'이라는 뜻이고 '의'가 비록 없지만 '땅콩 값'으로 두 단어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의 얼굴'이 '사람 얼굴'로 준다고 해서 한 단어 '사람얼굴'이 될 수는 없지 않나. '토마토 값', '바나나 값', '버터 값'도 다 마찬가지다. 두 단어이기 때문에 붙여써서는 안 된다. 그걸 붙여쓰니 한 단어인 줄 착각하게 되고 한 단어라고 생각하니 사이시옷을 붙이는 거다.
국어사전에 '휘발윳값', '채솟값', '우윳값'이 올라 있는 게 화근이었다. 그래서 급기야 '중고찻값'까지 나왔다. 학습 효과가 놀랍다. 무엇에 중독되면 중독된 줄을 모른다. 뭐가 잘못인 줄을 모른다. '중고찻값'을 보고 기가 차고 어이가 없다. 보통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