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친구가 세상을 떴다. 갑작스런 것은 아니었고 이미 예고된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부음을 접하니 여간 먹먹하지 않다. 유난히 동안이어서 누구도 예순 넘은 사람이라고는 보지 않았던 그에게 덜컥 병마가 찾아온 건 올 2월 무렵이었다. 작년 연말 모임 때도 전혀 병색 없이 늘 그랬던 것처럼 밝았던 그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즉 췌장암 4기였다는 것이다. 췌장암은 좀체 자각증상이 없고 발견됐을 땐 이미 대개 4기라는 얘긴 들었지만 그에게 그런 일이 닥칠 줄이야...
그는 얼굴만 동안이지 않았다. 유머 감각이 탁월했다. 특히 남이 한 말을 즉흥적으로 되받아 좌중을 폭소로 몰아넣는 기발한 재주가 있었다. 언어감각이 남달랐다. 동창 모임에서 오랜 동안 총무를 맡아 궂은 일을 했다. 그는 동창들의 옛날 일과 근황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다. 그에게 물으면 누구에 관해든 소식과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안색은 발그레했고 외모는 영락없는 소년이었다. 영원한 소년 같았다. 그랬는데 췌장암이라니 날벼락이었다.
당연히 모임엔 나올 수 없었고 한두 번 단톡방에서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머리가 다 빠져 있었고 몇 개 남지 않은 흰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쓸쓸히 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치료제가 독했으면 그리 되었을까.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까. 그는 그런 힘겨운 투병을 8개월 가량 했다. 투병을 하면서도 그는 친구들에게 매일 아침마다 단톡방에 경제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를 모아서 전해 주었다. 자신이 아직 살아 있음을 그런 방식으로 알렸고 거기엔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그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매일 올라오는 그 뉴스가 지난 9월 27일을 끝으로 끊겼다. 뭔가 병세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보름만인 오늘 오전 기어이 부음을 접하고야 말았다. 지난 8개월 동안 그가 겪었을 고통을 상상하기 어렵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8개월이 8년 같지 않았을까. 왜 그에게 그토록 혹독한 시련이 닥쳤고 기어코 그를 저 먼 곳으로 데려가고야 말았을까.
내일 그가 살았던 동네 병원을 찾을 참이다. 조문 온 몇몇 동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간병하느라 부인의 8개월도 여간 힘겹지 않았을 것 같다. 무슨 말이 위로가 될까. 그저 눈빛으로 위로하고 올 참이다. 누구나 가야 하는 길이지만 그는 너무 일찍 갔다. 착하디 착한 사람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