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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세는 것은 법과 무관하다

웃픈 민법 개정

by 김세중

조선일보에 "‘만 나이 통일’했지만 국민 3명 중 2명은 안 써… 한국 나이 왜 끈질긴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만 나이 통일법 시행 100일을 맞아 뉴욕특파원을 지낸 정치부 기자가 쓴 기사인데 상당히 깊이 파고들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여론조사기관인 SM C&C에 의뢰한 설문조사까지 했다. 조사를 해보니 지금 일상생활에서 만 나이로 연령을 말한다는 사람은 36.1%로 3명 중 1명이었다고 한다. 나머지는 일상생활에서 만 나이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사 결과는 이미 번히 예상됐던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나이를 말할 때 법을 의식하고 법을 지켜서 나이를 말하는 사람이 있었나. 집에서 세는 나이는 법에서 그렇게 하라고 해서 생긴 게 아니다. 수백, 수천 년 전부터 그렇게 해 왔다. 법이 없던 시절부터 민족의 풍속으로서 그리해 왔다.


집에서 세는 나이가 법과 무관하게 오랜 옛날부터 그렇게 해 왔을 뿐만 아니라 1958년 민법이 제정되었을 때부터 제158조에서 "연령계산에는 출생일을 산입한다."라고 해서 만 나이를 쓰도록 했다. 작년 12월 27일 공포되고 올해 6월 28일부터 시행된 개정 민법 제158조는 "나이는 출생일을 산입하여 만(滿) 나이로 계산하고, 연수(年數)로 표시한다."여서 비교해 보면 출생일을 산입하는 것은 똑같다. '출생일 산입'이 곧 '만 나이'를 쓴다는 뜻이다. '만 나이 통일법'은 이미 1960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던 것이다(1958년 2월 22일 공포).


지난 6월 28일부터 '만 나이 통일법'이 시행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쉽게 말해 국민 기만이었다. 사기와 진배없다. 원래 민법이 만 나이를 쓰도록 돼 있음을 알고도 '만 나이 통일법'으로 법 개정을 했다면 국민을 속인 것이고 원래 민법이 만 나이를 쓰도록 돼 있음을 모르고 법 개정을 했다면 무식해도 여간 무식하지 않은 것이다.


위정자가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세는 나이를 버리고 만 나이를 쓰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걸 법 개정을 통해 이루려고 한 것은 방향 착오였다. 세는 나이는 민족의 의식 속에 수천 년 전부터 뿌리 박혀 있던 것이다. 그 습속, 습관을 법으로 바꾸려 했고 그 법마저도 애초 '만 나이'를 쓰도록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만 나이 통일법 시행' 운운하며 난리를 쳤다. 시행 100일이 지난 지금도 2/3는 만 나이를 쓰지 않는단다. 너무나 당연하다. 수천 년 뿌리 깊은 습속이 어찌 쉬 바뀌겠나. 번지수를 잘못짚어도 한참 잘못짚었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웃프다'라는 말이다. 참 웃프다.


‘만 나이 통일’했지만 국민 3명 중 2명은 안 써… 한국 나이 왜 끈질긴가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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