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선정릉을 찾았다. 모임에서 문화해설사를 모셔서 해설을 들으며 능을 관람했다. 역시 그냥 둘러보는 것과 해설을 들으며 보는 건 천양지차였다. 많은 걸 새로 알게 됐다. 강남 금싸라기 땅에 거대한 능이 보존되어 있다는 건 여간 놀랍고 다행스런 일이 아니다. 숲이 얼마나 울창한지 새들 재잘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번에 새로 안 사실이 있다. 선릉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가 묻혀 있고 정릉은 중종이 묻혀 있는 능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선정릉은 속이 비어 있는 능이었다. 1593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그 다음해에 왜군이 선정릉을 파헤쳤단다. 도굴을 했고 시신을 꺼내 훼손했다. 이를 피란 갔다 돌아온 선조가 보고 받고 분기탱천해 왜에 강력히 요구했단다. 선정릉을 훼손한 범인을 잡아서 보내라고. 왜측이 이에 응하긴 했는데 전혀 엉뚱한 사람 몇을 보냈단다. 그들은 영문도 모르고 처형됐고... 임진왜란 때 조선 8도가 피바다가 됐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왕릉까지 훼손된 줄은 몰랐다. 기록에 남아 있으니 사실일 것이다. 그러니 선정릉은 겉만 형식을 갖추고 있을 뿐 정작 중요한 무덤 주인이 없는 빈 능이다.
해설을 들으며 많은 용어를 접했다. 혼유석은 혼이 뛰노는 돌이라는 뜻인데 능 앞의 넓적하게 생긴 거대한 돌이다. 저리 큰 돌을 어떻게 들어 올렸을까 잘 상상이 안 간다. 왕릉을 세우다가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 문석인, 무석인, 망주석, 장명등, 병풍석, 난간석 ... 이 중에서 문석인, 무석인이 특이하다. 그동안 문인석, 무인석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다. 문석인, 무석인이란다.
비록 임진왜란 때 시신은 도굴되어 훼손됐지만 선정릉은 잘 관리되고 있었다. 중종에게 세 왕비가 있었는데 다 뿔뿔이 흩어져 있단다. 단경왕후는 양주 온릉에, 장경왕후는 서삼릉의 희릉에, 아들 명종을 수렴청정하며 권력을 마구 휘둘렀던 문정왕후는 태릉에 묻혔다. 남편 곁에 묻힌 왕비는 없었다. 조선시대 왕권은 대단했다. 왕릉을 꾸미느라 백성들이 죽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