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세계인의 문자로 진화하고 있나
한글날 즈음에는 말과 글에 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시의적절하다. 한 신문에는 전직 국어교사가 국어사전의 부실을 고발한 기사가 실렸다. 국가기관에서 만든 국어사전에 심각한 흠이 있음을 그는 지적했고 신문사가 국가기관에 문제를 제기하자 일부는 즉각 시정됐다. 오늘 또 한 신문은 논설위원이 한글에 대해 찬양하는 칼럼을 썼다. 한글의 가치를 세계가 인정하고 있음을 칼럼에서 예를 들어 설명했다.
칼럼을 읽으며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어 도움을 받았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았다. 예컨대 다양한 외국어 표현을 위해 한글을 개조해 새로운 문자 체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그렇다. 자음 94개와 모음 30개, 우리말에 없는 성조(聲調)를 표현하는 기호 등을 합해 기본 134자라고 하는데 이렇게 복잡한 문자 체계는 지구상에 없어 보인다. 물론 어떤 특정 언어를 표기할 때는 이 중에서 일부만을 쓰는지는 모르겠다.
칼럼은 끝을 "한글은 한국인의 문자에서 세계인의 문자로 진화하고 있다."라고 맺고 있다. 좀 과한 게 아닌가 한다. 이탈리아 명품 패션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몇 해 전 한글 서체로 자사 브랜드명을 새긴 점퍼와 니트를 선보였다고 그걸로 한글이 세계인의 문자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의상 디자인일 뿐 아닌가.
한국의 존재 자체를 아는 세계인이 드물다가 이제 한국은 주목 받고 각광 받는 나라가 됐다. 뿌듯하고 자긍심을 가질 만하다. 게다가 한글이라는 고유 문자까지 갖고 있다. 그 문자는 간명하고 과학적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면 좋겠다. 한글이 세계인의 문자가 되고 있다는 건 허풍에 가깝다 본다. 각 나라는 고유한 문자를 쓰고 있다. 그들에겐 그 문자가 소중하다. 우리에게 한글이 소중하듯이. 아랍문자를 배워 보려고 책을 샀는데 여간 배우기가 어렵지 않다.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