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밭

가슴 벅찬 하루

외롭지 않음을 느낀다

by 김세중

점심에는 고교 동창들과 만났고 오후에는 대학 후배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창들과는 딴 일로 만났다가 말미에 내가 쓰고 있는 책 이야기를 하게 됐고 국어국문학과 교수인 후배와는 오로지 그 책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만났다. 역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봐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들로부터 귀한 조언을 들었고 무릎을 쳤다.


작년 봄에 <민법의 비문>을 냈지만 별무소득이었다. 성과가 없었다. 모든 법률의 중심에 있는 민법의 문장이 낡고 오류투성이임을 고발했으니 '울림'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 신문에 인터뷰가 실렸을 뿐 다른 모든 신문이 외면했다. 책 판매도 미미하기 그지없었다. 울림은 전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우선 책 제목부터 실패작이었다. 나로서는 <민법의 비문>이라면 사회에 상당한 경종을 울리리라 생각했다. 비문(非文)은 말이 안 되는 문장인데 완벽해야 할 법에 비문이라니! 더구나 모든 법의 근본인 민법에 비문이 있다니! 그러나 그건 내 생각이었을 뿐 일반 대중에겐 비문이란 말 자체가 낯설었다. 민법의 비문이라는 제목이 무슨 뜻인지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사볼 맘이 날 리 없었다.


지난 1년 전부터 준비한 책은 민법만 다루지 않는다. 형법, 상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등 기본법에 들어 있는 숱한 문제점을 다 꺼내서 드러내 보였다. 문제는 책 제목이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생각해낸 게 대한민국 기본법을 고발합니다였다. 그걸 오늘 친구들에게 선보였다. 그런데 친구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한결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로선 작년에 실패를 맛본 '민법의 비문'의 문제점을 극복한, 꽤 산뜻한 대안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친구들은 즉흥적으로 다른 몇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엉망진창 대한민국 기본법, 뒤죽박죽 대한민국 기본법, 세종대왕이 땅을 칠 대한민국 기본법, 세종대왕도 벌떡 일어날 대한민국 기본법 등등... 과연 대한민국 기본법을 고발합니다보다 훨씬 쉽고 와 닿는 제목이다 싶었다. 물론 아직 결정한 것은 없다. 친구들이 제안한 안도 포함해서 여럿을 놓고 고민해보려 한다. 대한민국 기본법을 고발합니다는 접기로 했다.


B 교수와는 정말 진지한 논의를 했다. 관심사와 목표가 같으니 할 말은 끝이 없었지만 그가 다른 약속이 있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100% 생각이 똑같지는 않았지만 큰 틀에서는 일치했다. 우리나라 기본법의 언어가 참담하기 그지없다는 데 공감하고 이를 어떻게든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오늘은 아주 가슴 벅찬 대화를 나눈 날이다. 외롭지 않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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