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밭

한글 전용이 이다지도 어려운가

끈질긴 보수성

by 김세중

우리나라에 법률이 1,600개쯤 된다.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법이 있었던 건 아니다. 최상위법인 헌법은 1948년 7월 17일에 제정, 공포, 시행되었고 그래서 그날을 제헌절로 기린다. 그 아래의 법률은 어떤가? 최초의 법률은 정부조직법인데 바로 헌법과 같은 날 제정, 공포, 시행됐다. 민법, 형법, 상법 등은 훨씬 나중에 제정됐다. 민법은 1958년에, 형법은 1953년에, 상법은 1962년에 제정됐다.


1948년 7월 17일에 공포된 헌법, 정부조직법은 물론이고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제정된 법률은 깡그리 한자로 적혀 있었다. 법이 수없이 개정되었지만 한자는 요지부동이었다. 한글로 바뀌지 않았다. 정부조직법도 참으로 많이 개정되었는데 2008년 2월 29일에서야 전 조문이 한글로 바뀌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한자를 한글로 바꾸었는지 참 신통하다.


그러나 1,600개쯤 되는 법률 중에는 아직까지도 새카맣게 한자로 적혀 있는 법률이 몇 있다. 기본법인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이 그렇고 그밖에 국가보안법, 보안관찰법, 즉결심판에 관한 절차법이 한자를 한글로 바꾸지 않고 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은 이들 법들도 법제처의 인터넷 법령정보센터에서는 한글로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漢'이라는 버튼을 누르면 이들 법률은 한자로 바뀐다. 법 자체가 한글로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변호사시험을 볼 때 수험장의 수험생들에게는 법무부에서 수험용법전을 제공한다. 두툼한 종이책이다. 그 법전에는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이 모두 한글로 적혀 있다. 요즘 사람들이 한자를 잘 모르기 때문에 '법대로' 한자로 적힌 법전을 제공했다가는 자칫 쓸모가 없을 수 있다. 실제로 지금 판사의 판결문, 검사의 공소장, 변호사들의 준비서면에 한자를 쓰지 않는다. 괄호 안에 한자를 넣으면 몰라도.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 그리고 국가보안법, 보안관찰법, 즉결심판에 관한 절차법도 한자를 한글로 바꾸는 법 개정을 하기 바란다. 가장 오래된 법률인 정부조직법도 2008년 2월 29일에 그런 개정을 했다. 기본법 중 하나인 민사소송법은 그보다 앞선 2002년에 한글로 바꾸는 개정을 했다.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은 왜 정부조직법, 민사소송법의 예를 따르지 못하나. 법조계의 끈질긴 보수성을 절감한다. 그렇게 고집 부릴 게 아니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은 뭐 하고 있나.


2_h74Ud018svc1jv3yvu7wiyjl_hgt0e.png 2008년 2월 29일 개정되기 전의 정부조직법. 국한 혼용이다.


b_774Ud018svc1850or3w1lzte_hgt0e (1).jpg 2008년 2월 29일 개정된 정부조직법. 한글 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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