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외국에 다녀왔다. 베트남이다. 겨우 나흘 지내다 왔는데 '베트남 방문 소감'이라니 거창한 감이 있지만 워낙 보고 느낀 게 많아 감회를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매우 긴 나라다. 약 1,700km에 가깝다고 한다. 국토 면적은 남한의 3.3배 정도이고. 인구는 1억을 돌파했다 한다. 젊은 층 인구 비율이 높아 상당 기간 약진하는 나라가 되리라 전망되고 있다. 처음 방문은 1996년이었고 이번이 여섯 번째 베트남 방문이었다.
이틀은 냐짱에서 묵었고 이틀은 달랏에서 보냈다. 베트남 남부 지역 도시들이다. 냐짱은 해안에 있고 달랏은 내륙 고산지대에 위치한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냐짱, 달랏 사람들 사는 모습을 수박 겉핥기식이지만 들여다보고 왔다. 일행이 잠에 빠져 있는 5시에 호텔 방을 나와 매일 아침 두 시간씩 걸었다.
냐짱도 처음 달랏도 처음이었는데 달랏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특히 둘쨋날 아침 쑤안흐엉호수를 걸으면서 그랬다. 우선 달랏부터 보자. 달랏은 최근 각광받기 시작한 관광도시로 해발 1,500미터의 고산 지대에 위치해서 날씨가 서늘하다. 베트남 같지가 않다. 외국인들은 물론 베트남사람들이 휴양을 위해 올 정도라니 알만하다. 그리고 쑤안흐엉호수는 달랏 한복판에 있는 호수로 달랏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쑤안흐엉호수는 크기가 일산 호수공원만 하다. 왜냐하면 한 바퀴 도는 거리가 5km 가까우니까. 그걸 아침에 한 바퀴 돌았다. 돌면서 마주친 수많은 달랏 사람들의 모습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달랏에 쑤안흐엉호수가 없다면 어떨까. 그건 도무지 상상이 안 된다. 그만큼 아침 쑤안흐엉호수 둘레길은 달리는 사람, 걷는 사람, 자전거 타고 도로를 달리는 사람 등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호수 남쪽 곳곳에는 배드민턴이며 발로 공 차기 놀이하는 사람들, 그리고 혼자서 체조하는 사람, 여럿이 음악 틀어 놓고 춤추거나, 명상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열심이었다.
호수 북동쪽 넓은 풀밭에는 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그곳에서 한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말을 끌고 나오더니 도로로 나와 자기는 오토바이를 타고 말을 끌고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마찬가지듯 달랏에도 개들이 도처에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은 목줄을 한 개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 많은 개들이 다 목줄 없이 자유롭게 다니고 있었다.
달랏에서 하루는 아침에 쑤안흐엉호수를 걸었고 하루는 주택가를 지나 북쪽의 럼동성 경기장 부근까지 갔다 왔다. 호수와 달리 주택가 안이라 사람들 사는 모습을 힐끗 볼 수 있었다. 아침에 청소차가 곳곳에 내다 놓은 쓰레기를 차에 담아 가는 모습을 걸으면서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익숙한 동작으로 여기저기 쌓인 쓰레기 봉지를 차에다 쓸어 담아 갔다. 거리가 좀 누추해 보여도 쓰레기가 없는 이유를 알만했다. 도시는 청소에 열심이었다.
달랏에 그렇게 호텔이 많은 줄 몰랐다. 물론 2성, 3성급 호텔이다. 아마 수백 개는 되고도 남을 것이다. 덥디 더운 열대의 나라 베트남에서 달랏은 사시사철 더운 줄 모르고 선선하다니 사람들이 몰려들만하다. 루지를 타고 다딴라폭포로 내려가보았다. 걸어서 가면 한참 가야 하지만 루지를 타니 눈 깜짝할 새다. 스릴도 있고... 그리고 진흙공원도 갔다. 말이 진흙이지 딱딱한 돌로 된 조형물들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좀 외진 데 있지만 공기 맑은 산중에 있으니 와볼만했다. 랑비앙전망대는 해발 2,167m인 랑비앙산의 중턱에 세워진 곳인데 해발 1,950m쯤 됐다. 산 아래에서 전망대를 오가는 차를 승차권을 구입해서 타고 올라야만 한다. 물론 걸어갈 수도 있겠지만 꽤나 멀다. 얼마 전 랑비앙전망대에서 한국인 관광객 한 명이 넘어져서 목숨을 잃었단다. 별로 위험한 곳이 없어 보였는데 운이 없으려니 별일이 다 생긴다.
달랏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비닐하우스다. 달랏은 주택 아니면 비닐하우스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비닐하우스로 뒤덮여 있다. 그 안에서 재배되는 작물은 다양해 보였다. 온갖 작물이 자라고 있었다. 그 비닐하우스가 1990년대에 그곳에 뛰어든 한국인 원예 교수였단다. 김진국 효성여대 교수가 그곳에 비닐하우스 농법을 보급하면서 달랏은 비닐하우스 도시로 변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여 년 됐지만 그가 남긴 농법이 달랏 사람들을 풍족하게 살게 하고 있다.
달랏에서 2박을 한 뒤 다시 냐짱으로 돌아왔다. 달랏과 냐짱 사이의 길이 장관이다. 3시간 정도 되는 거리인데 냐짱에서 달랏 갈 때는 끝없는 오르막길이고 달랏에서 냐짱으로 갈 때는 그 반대로 내리막길이다. 끝이 없을 듯하더니 결국은 내려오기는 했다. 도로 포장 공사가 보통 큰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몇 년 걸렸을 것이고 희생자도 적지 않았으리. 강원도에도 굽이굽이 고갯길이 많지만 냐짱에서 달랏 가는 길만큼 규모가 크진 않다.
달랏은 럼동성의 성도이고 냐짱은 칸호아성의 성도이다. 냐짱은 달랏보다 훨씬 더 대도시 같았다. 고층빌딩이 여기저기 하늘을 찔렀다. 무엇보다 날씨가 달랐다. 냐짱의 해안에는 아침부터 해수욕객이 들끓었다. 외국인들도 있었지만 베트남사람들이 더 많았다. 11월에 해수욕이라니... 하긴 35도 전후니 땀이 절로 났다. 선선한 달랏과는 딴판이었다. 냐짱의 해변에도 아침엔 운동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베트남사람들은 운동에 진심이었다.
이번에 열대 과일을 참 많이 먹었다. 망고, 망고스틴, 코코넛은 물론이고 두리안도 열심히 먹었다. 그밖에 이름이 생각 안 나는 과일들도 여럿 맛봤다. 과일은 물이다. 갖가지 맛의 즙이 열매 속에 들어 있었다. 사과도 보였고 딸기가 달랏에 참 많았는데 색깔이 한국 딸기처럼 선명하지 않고 좀 흐렸다. 두리안을 몇 년 만에 먹어봤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같은 두리안이라도 냄새가 달랐다. 어떤 건 강렬하고 어떤 건 밍밍하고... 어떻든 묘한 맛이었다.
4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냐짱 남쪽 깜란국제공항에서 항공기 탑승을 기다리며 전광판을 보는데 눈이 휘둥그레졌다. 10여 편의 출발을 알리고 있는 전광판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한국행이었다. 인천이 대부분이고 부산이 몇 있었으며 청주가 한 편이었다. 30분쯤 지났을까 그때서야 다른 나라행 항공편이 하나 나타났다. 캄란국제공항은 거의 한국인을 위한 공항이었다. 랑비앙전망대를 가기 위한 주차장에 서 있는 관광버스도 온통 한국인 관광객을 태운 버스였다. 달랏과 냐짱 곳곳의 마사지샵도 온통 한국인 일색이었다. 어느 관광지든 한국어 설명이 붙어 있었고... 언제부터 한국과 베트남이 이리도 가까워졌을까. 나흘간 일본인 관광객을 한 사람도 마주치지 못했다. 코로나가 끝나고 냐짱, 달랏은 한국인들로 뒤덮이다시피 했다. 한때 제주도가 중국인 관광객들 일색이더니 지금 냐짱, 달랏은 한국인이 압도적이다. 여행사들 전략이 주효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