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국민이 몰라도 되나
어제는 몇 달만에 지인 한 분과 통화했다. 검사 출신의 변호사요 전직 국회의원이다. 이 나라에 실로 수많은 법조인이 있지만 이 분만큼 우리말에 대해 관심과 애정이 큰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난해한 법조문은 알기 쉽게 반듯하게 씌어 있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우리나라 법은 그렇지 않다고 믿는 분이었다. 법무부 근무 시절 우리나라 법언어 개선을 위해 참 많이 애썼다. 그래서 이 분을 평소 존경해 마지 않았다.
어제 통화도 법률 언어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이 분은 20여 년 전부터 법조문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여전히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었다. "언젠가 되긴 될 거예요."
순간 맥이 풀렸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언젠가'가 도대체 언제란 말인가. 언젠가 될 거라는 생각으로 지난 세월을 보내온 거 아닌가. 또 앞으로 얼마나 세월이 지나야 낡기 그지없고 언어적 오류가 그득한 법률 언어가 반듯하게 바로잡힐까. 언젠가 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법률가가 되고자 로스쿨과 법대에서 법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고통을 겪고 있는데... 나홀로 소송을 하려고 법조문을 뒤적이며 법조문의 뜻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민초들이 얼마나 많은데...
언젠가 되긴 될 거라는 막연한 희망만으로 지내기엔 지금 현실이 너무나 엄중하다. 그렇게 안이하고 한가하게 있을 일이 아니다. 민법, 상법, 형법 등 이 나라 기본법의 조문은 기성 법조인들만을 위한 것이다. 국민은 몰라도 된다는 생각이 없고서야 엉망진창인 법률 문장을 바로잡지 않고 이대로 놓아둘 수 없다. 법은 국민이 몰라도 되나? 법학자, 법조인들만 알면 되나? 법은 그들만을 위한 것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