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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하거나?

형법을 개정 못할 이유가 뭐 있나

by 김세중

오늘 검사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한 변호사와 만났다. 그는 형사법을 전공하여 법학박사 학위까지 받은 분야다. 이분과 대화하면서 깜짝 놀란 사실이 있다. 우리나라 형법 제136조(공무집행방해)에 '지하거나'라는 해괴한 말이 있다고 하니 놀라면서 '지하거나'라 돼 있지 않냐고 되묻는 것이었다. 그는 형법 제136조제2항이 '지하거나'라 돼 있는 줄 알고 있었다. 1972년에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니 법조 경력이 무려 50년이 넘는 분인데 말이다. 국가가 제공하는 <법령정보센터>에는 다음과 같이 돼 있다.


제136조(공무집행방해)

①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12.29>

② 공무원에 대하여 그 직무상의 행위를 강요 또는 조지하거나 그 직을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그러나 편의상 이렇게 돼 있을 뿐 법적, 공식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돼 있다. 한자로 적혀 있다.


第136條(公務執行妨害) ①職務를 執行하는 公務員에 對하여 暴行 또는 脅迫한 者는 5年 以下의 懲役 또는 1千萬원 이하의 罰金에 處한다. <改正 1995.12.29>

②公務員에 對하여 그 職務上의 行爲를 强要 또는 阻止하거나 그 職을 辭退하게 할 目的으로 暴行 또는 脅迫한 者도 前項의 刑과 같다.


이를 한글로 적으면서 '阻止하거나'를 '조지하거나'라 한 것이다. 왜 국가법령정보센터나 법전 만드는 출판사에서는 '저지하거나'라고 하지 않고 '조지하거나'라 했을까.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다. 에는 '조'라는 음만 있지 '저'라는 음은 없다. 따라서 한자가 '阻止'인 이상 '지하거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거나'는 국어에 없고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말인데도 말이다.


왜 우리나라 형법은 1953년에 제정될 때 '阻止하거나'라 했을까. 일본어에 '阻止'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어에는 '阻止'나 '沮止'가 있고 둘은 뜻이 같다. 그러나 한국어에는 '沮止'만 있고 '阻止'가 없다. 애초에 형법을 만들 때 '沮止하거나'라고 했어야 옳았다. '阻止하거나'라 한 게 잘못이었다. 그렇게 한 이상 '지하거나'라고 읽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형법을 개정하는 수밖에 없다. 개정 못할 이유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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