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이렇게 하찮게 여거도 되나
그동안 준비해온 책이 나올 때가 가까워졌다. 원고가 거의 마무리돼 간다. 한 신예 변호사가 원고를 꼼꼼히 읽어보고 몇 가지 의문을 던졌다. 그가 제기한 물음이 대부분 타당했고 원고를 다듬으려고 한다. 법조인이 아닌 내가 법을 잘 몰라서 실수가 빚어졌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이 있었다.
형사소송법 제216조 제2항은 다음과 같다.
이 조항은 '~에 준용한다'로 끝나 있는데 또 어떤 조항은 '~을 준용한다'로 끝나 있으니 어떻게 된 거냐고, 뭐가 맞냐고 변호사가 내게 질문했다. 예컨대 이런 거다.
웃으며 답했다. '~에 준용한다'나 '~을 준용한다'는 둘 다 맞다고. '~에 준용하다'는 어디에 준용한다는 뜻이고 '~을 준용하다'는 무엇을 준용한다는 것이니 상황에 맞게 쓰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가 납득했다.
문제는 "전항 제2호의 규정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피고인에 대한 구속영장의 집행의 경우에 준용한다."이다.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와 호응하는 동사가 없다. 의미상 호응하는 말은 '집행'이다. 그러나 '집행'은 명사지 동사가 아니다.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가 나온 이상 서술어로 동사가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데 엉뚱하게도 명사가 나왔다. 이런 해괴한 문장이 대한민국 기본법의 하나인 형사소송법 조문에 들어 있다. 미치고 환장하겠다. 잘 믿어지지 않아 살을 꼬집어 볼 정도이다. 말을 이렇게 하찮게 여겨도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