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았으나 명예는 없었다
<서울의 봄>을 만들면서 제작진은 1979년 12월 12일에 실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면밀히 검토 분석했을 것이다. 일단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한 다음에 그걸 고스란히 영화로 담든 어떤 대목은 약간 변형을 하든 했지 않을까. 아무튼 영화는 실제 있었던 일을 사실 그대로 담은 부분도 있을 테고 극적 효과를 위해서 살짝 비튼 데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내가 흥미 있게 본 대목이 있다. 국방장관이 보인 행적이다.
12.12는 반란군측이 계엄사령관을 체포한 게 핵심이다. 대통령 재가를 받지 않고 말이다. 물론 계엄사령관을 체포하기 위해 체포조를 보냄과 동시에 보안사령관은 대통령 재가를 받기 위해 대통령에게 찾아갔지만 당시 최규하 대통령은 재가하지 않았다. 버텼다. 국방장관의 말을 들어보지 않고 덜컥 계엄사령관 체포에 사인해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반란군측은 애가 탔다. 대통령 재가를 받기 위해서는 국방장관을 찾아야 하는데 국방장관이 도무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국방장관은 그날 저녁 자기 관저 가까이의 육군참모총장 관저에서 총소리가 나는 걸 듣고 바로 집을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집을 빠져나갔다.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1979년 12월 12일 저녁에 실제로 당시 노재현 국방장관은 '택시'를 타고 한남동을 빠져나갔나? 그게 사실인가? 국방장관에게는 당연히 전용차와 운전기사가 있지 않았겠나? 그런데 왜 택시를 탔을까. 워낙 급했으니 그랬을 거라고밖엔 설명이 안 된다. 당장 몸을 피해야겠는데 기사가 안 보이니 택시라도 타는 수밖에. 이게 국방장관이냐? 이게 나라냐?
노재현 당시 국방부장관은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도 지낸, 군의 최고 요직을 모두 거친 이였다. 그런 사람이 12.12 당일 보인 모습은 참으로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그는 총소리에 놀라 몸을 피하기에 바빴다. 대통령이 그를 찾고 군 고위층이 그의 지시를 받으려고 찾았지만 그는 숨어 버렸다. 결국 뒤늦게야 나타나 반란군 손을 들어주었지만... 1926년생이라는 그는 2019년 93세로 세상을 떠났다. 오래 살았지만 명예를 누리며 산 것 같지는 않다. 존경을 받기는커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