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의 출현이 요구된다
우리나라 민법 제2조는 다음과 같다.
민법은 제1118조까지 있는 방대한 법이다. (1118개 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더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삭제된 조항보다 추가된 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일테면 제14조 다음에는 제14조의2, 제14조의3이 있고 그 다음에 제15조가 있다. 제14조의2, 제14조의3처럼 추가된 조가 굉장히 많다.)
그런데 제2조제1항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을 읽고 어떤 느낌이 드는가. 아리송하지 않은가. '신의에 좇아' 때문에 말이다. '신의에 좇아'의 '좇다'는 '명예를 좇다', '부귀영화를 좇다'에서 보는 것처럼 '~을/를 좇다'로 쓰이는 말이다. 그렇다면 '신의를 좇아'여야 하지 않나. 그런데 '신의에 좇아'이다. 왜 이럴까. 답은 일본 민법에 있다. 일본 민법의 해당 조항은 다음과 같다.
일본 민법 제1조 2 '信義に従い'를 아무 생각 없이 '신의에 좇아'로 번역한 결과다. 일본어 조사 'に'가 보통 '에'니까 '신의에 좇아'라 한 것이다. '신의를 좇아'로 번역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1958년에 민법을 제정, 공포할 때 그렇게 했는데 65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다. 어찌 한심하지 않나. (사실은 '신의를 지켜'나 '신의에 따라'라고 해야 옳았다. 왜 별로 잘 쓰지도 않는 '좇아'인가!)
'신의에 좇아'는 수많은 민법의 비문 중 한 예에 불과하고 민법에는 이런 엉터리 문장이 수백 개 있다. 이걸 바로잡지 않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럼 왜 이런 어이없는 한심한 표현이 고쳐지지 않고 있는가. 그 이유가 참 궁금한데 곰곰이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는 바 아니다.
사실 민법의 엉터리 문장을 깔끔히 바로잡은 민법 개정안은 이미 두 차례 국회에 제출된 적이 있다. 법무부가 2015년 제19대 국회에, 2019년 제20대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이를 심의조차 하지 않았다. 다룰 '꺼리'가 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왜 '꺼리'가 되지 않는다 보았을까. 이유는 자명하다. 민법에 수많은 엉터리 문장, 잘못된 오역 등이 있지만 그게 불편하다고 아우성치는 집단이 있었나? 법은 주로 법률가들이 사용하는데 법률가들이 가만 있는데 왜 국회의원들이 개정이 시급하다 느끼겠는가. 당연히 심의도 되지 못한 채 폐기되고 말았다.
국회에 제출된 수없이 많은 법률안은 대부분 이해 당사자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법률이 제정되거나 개정됨에 따라 이득을 얻는 집단이 있는가 하면 타격을 입는 집단이 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기에 치열하게 다툰다. 어느 쪽이 국회의원들을 설득해 국회가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하고 그렇지 못해 부결되기도 한다. 그러나 민법 개정안의 경우 엉터리 문장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는 집단, 단체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국회의원들이 민법 개정안을 굳이 처리해야 할 이유가 없다. 결국 제19대 국회, 제20대 국회에 제출됐던 민법 개정안은 폐기되고 말았다. 제21대 국회에서는 아예 민법 개정안은 제출조차 되지 않았다.
이래서는 안 된다. 엉터리 법조문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왜 없나. 로스쿨에서 법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괴상하고 희한한 문장 때문에 얼마나 애를 먹고 있나. 나홀로 소송을 하며 법조문을 뒤적이는 일반 국민들은 또 한둘인가. 다만 이들은 법조문을 읽으며 왜 조문이 잘 이해되지 않는지 이유를 잘 모를 뿐이다. 법률용어가 어렵고 규율되고 있는 관계 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이라 생각하지 문장이 엉터리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을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민법의 엉터리 문장을 고쳐 달라는 소리를 내지 않는 건 당연하다.
그러는 사이에 60~70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 시민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법은 법조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민의 것이다. 민법, 형법, 상법 등에 남아 있는 숱한 비문법적인 조문은 반듯하게 고쳐져야 한다. 오류투성이 법조문 바로잡기를 위해 투쟁할 시민단체의 출현이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