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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헌법 조문

헌법은 문법을 무시해도 좋은가

by 김세중

오늘 조간신문에 오래 전에 재경원 차관을 지낸 분의 글이 실렸다. 그의 글은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이 정작 해야 할 입법은 하지 않고 불필요하거나 나라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법을 만들고 있다며 유권자들이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국회의원이 국민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입법은 않고 당리당략이나 사리사욕만을 위한 입법을 한다면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예산 심의에 대해서도 물론 마찬가지다.


그런데 글을 읽으면서 엉뚱한 곳에 내 눈길이 미쳤다. 글쓴이는 헌법 제57조를 인용하였는데 이렇게 말했다. "한법은 또 제57조에서 "행정부의 동의 없이는 지출 예산의 각항 금액을 늘리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라고 말이다.


0_i1dUd018svc1hcyk1f7l6rth_hgt0e.jpg 헌법 제57조를 인용하면서 '증가하거나'를 '늘리거나'로 바꾸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헌법에는 "행정부의 동의 없이는 지출 예산의 각항 금액을 늘리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라 되어 있지 않고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제57조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


헌법에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라 되어 있지만 글쓴이는 '지출 예산의 각항 금액을 늘리거나'라 하였다. 왜 헌법에 있는 '증가하거나'를 자기 마음대로 '늘리거나'로 바꾸었을까. 그래도 되는 걸까.


헌법은 어마어마한 권위를 가진 법인데 조문을 인용하면서 표현을 바꾸었다. 이유는 명백하다. 헌법에 있는 '금액을 증가하거나'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헌법 조문을 멋대로 바꾼 것은 잘못이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헌법이 잘못이지 '금액을 늘리거나'로 바꾼 사람이 잘못한 게 아니다. 헌법이 문법을 어겼고 글쓴이는 틀린 문장을 바로잡았다.


헌법이라고 문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다. 그럴 턱이 없다. 헌법에 들어 있으면 그 어떤 잘못이나 오류도 용서되고 묵인되나. 아니다. 신문에서 헌법 조문을 인용하면서 '금액을 늘리거나'로 바꾼 글쓴이에게 지지를 보낸다. 악법도 따라야 하나. 아니다. 악법을 따르면 그 악법에서 영영 헤어나지 못한다. 다음 헌법 개정 때는 '금액을 증가하거나'가 바로잡히기를 기대한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다. 1948년 헌법 제정 때부터 지금껏 그대로다. 아홉 차례 개정하는 동안 한번도 고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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