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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밭

대략 난감

폰이 삶을 지배하는 세상

by 김세중

지인들과의 소통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밴드다. 카톡은 가끔만 쓴다. 카톡은 왠지 가볍고 경박해 보여 될 수 있으면 멀리한다. 대신 밴드는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고 공간 자체가 품위 있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밴드에 많이 기울어져 있다. 물론 브런치도 내 생각을 세상에 알리고 소통하는 주요 통로다.


그런데 난감한 일이 생겼다. 엊그제 밤 늦게 폰을 잃어 버렸다. 대학 동창과 몇 년만에 만나 3차까지 가며 만취를 했고 그와 헤어져 호프집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떨어뜨린 모양이다. 맨 정신이었다면 그 묵직한 폰이 떨어졌을 때 금세 인식하고 주웠을 텐데 (아예 떨어뜨릴 일도 생기지 않았겠지만) 취하다 보니 땅에 떨어뜨리고도 몰랐던 모양이다. 호프집에서 나와 불과 100미터 남짓밖에 걸어가지 않아서 폰이 없음을 깨달았으니 겨우 그 100미터 구간에서 폰을 떨어뜨렸음이 틀림없다. 호프집에서 폰으로 통화도 하고 그 폰으로 술값 계산까지 했으니 그것밖에 더 있으랴.


방법이 없다. 새로 장만하는 수밖에. 그래서 늘 거래하던 성북구 동선동의 폰 가게로 아침에 득달같이 달려왔다. 하지만 폰 가게는 10시부터라 했다. 아직 시간이 40분이나 남아 있어 피시방을 찾아 들어갔다. 시간을 보내려고... 그런데 밴드에 들어가려고 보니 폰으로 인증번호를 보냈으니 인증번호를 넣으라지 뭔가. 그런데 폰이 없는데 어떻게 인증번호를 넣나? 그러니 밴드에 들어갈 방법이 없다. 그런 거 요구하지 않는 브런치에나 들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세상이 너무 폰에 종속돼 있다. 자초했다. 내 폰에는 신용카드 기능, 교통카드 기능을 심어 놓았다. 폰으로 마트나 다이소에서 물건도 사고 그걸로 지하철도 타고 버스도 탄다. 은행 거래도 그걸로 한다. 폰에 몰빵을 한 거다. 아니 몰빵하지 않을 수 없게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 폰에 든 지인들 전화번호, 폰에 빼곡히 수집되어 있는 유용한 앱들... 이거 회복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마 잘 안 될 것이다. 모처럼 과음했더니 그만 생활 리듬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회복을 위해 몸부림쳐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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