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이 회수를 넘으면 탱자가 된다
한 신문이 지방의 인구 소멸 현장을 찾아 르포 기사를 냈다. 경북 의성과 영덕을 찾아서 그 생생한 실태를 보도했다. 젊은 층은 사라지고 온통 노인뿐인 실정이 소상히 드러나 있었다. 그 기사에서 '실버카'라는 단어를 접했다. 잘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기사에서도 처음에는 '실버카'라고 따옴표를 치더니 다음부터는 따옴표 없이 실버카라고만 했다.
궁금증이 생겼다. 실버카의 어원에 대해서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안 올라 있었고 우리말샘에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실외에서 활동할 때 이용하는 보행 보조 기구.'라고 뜻풀이되어 있었다. 원어는 silver car인데 원어의 의미와 달라졌다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영어에서 silver car는 무슨 뜻인가 싶어 인공지능 바드에 물어보았다. 바드는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silver car의 가장 일반적인 뜻은 회색 승용차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뜻은 스페인에 있는 Silver Car라는 자동차 회사의 차라는 것이고.
세번째, 네번째 뜻 역시 자동차라는 뜻이었지 노인용 보행 보조 기구라는 뜻은 없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영어에서는 노인용 보행 보조 기구를 뭐라고 하는지 말이다. 그 또한 바드에 물어보았다. 바드의 답변은 이랬다.
이런 물건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는 walker bag, walker basket 또는 walker tote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런 말들이 전세계 모든 영어인지 아니면 미국 영어만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노인용 보행 보조 기구를 silver car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노인용 보행 보조 기구를 실버카라고 부르는 건 한국만의 일 같다.
고등학교 때 배운 "귤이 회수를 넘으면 탱자가 된다."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회색 자동차'인 silver car가 한국에 와서 '노인용 보행 보조 기구'가 되는 것 또한 같지 않나 싶다. 나도 언젠가 실버카 신세를 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하긴 실버카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외출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거동을 못하고 침대에서 나날을 보내는 노인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늙고 병 드는 건 피할 수 없나 보다. 어쩌겠나.
그런데 이게 웬 일이냐. '실버카'가 한국에서 만든 말 같지가 않다. 일본에선 이를 歩行補助車 또는 シルバーカー라 한다는 것이었다. シルバーカー가 silver car를 음차한 거 아닌가. 일본어 シルバーカー가 먼저이고 한국어가 이를 본떠 실버카라 한 걸까. 한국어 실버카를 일본어에서 받아들여 シルバーカー라 한 걸까. 알 길은 없지만 짐작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