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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밭

주어 실종

파격도 지나치면 볼썽사나워진다

by 김세중

중앙일간지에서 한 칼럼을 읽다가 의문이 들었다. 군더더기를 덜고 한껏 압축적이고 경제적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꼭 필요한 말까지 생략해서야 되나 싶다. 다음을 보자.


... 하지만 살기가 너무 힘드니 백두 혈통 숭배에도 작은 금이 생기고 있다. ‘한라 혈통’(한국 온 탈북민과 북의 가족)이다. 탈북민들이 만든 말이다. 넓게 보면 수십만명일 것이다. ...


"'한라 혈통'(한국 온 탈북민과 북의 가족)이다."는 한 문장이다. 그런데 뭐가 한라 혈통이라는 건지가 보이지 않는다. 주어를 생략했다. 생략하더라도 독자가 주어를 복구해서 이해할 거라 생각하고 그랬겠지만 난 생략된 주어가 뭔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앞 문장에서 찾는 수밖에 없는데 '작은 금'이 '한라 혈통'이라는 걸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어서 나오는 문장인 '탈북민들이 만든 말이다' 역시 주어가 없다. 뭐가 탈북민들이 만든 말이라는 건가. 이 경우는 그래도 주어가 '한라 혈통'임을 충분히 알 수 있으니 생략할 만하다 싶다. 이어지는 '넓게 보면 수십만명일 것이다.'에도 역시 주어가 없다. 물론 이 경우에도 '한라 혈통'이 '수십만명일'의 주어 같긴 하다.


군더더기를 피하고자 하는 글쟁이의 심리는 이해하지만 그게 과도하면 뜻이 아리송한 글이 되고 만다. 과한 생략은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바람직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생략을 구사하더라도 용인 가능한 범위 안에서 해야겠다. 파격도 지나치면 볼썽사나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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