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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가 형용사로 인정 받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어디 '맞다'뿐일까

by 김세중

우연히 표준국어대사전 사이트에 들어가게 됐는데 눈에 번쩍 띄는 공지사항을 보았다. '‘맞다’ 형용사 추가 관련 주요 수정 내용'이라는 제목의 알림이었다. 아! 드디어 '맞다'가 형용사로 인정받았구나 싶었다. 그렇다. 이제까지 '맞다'는 국어사전에서 '동사'로만 되어 있었고 형용사인 '맞다'는 없었다. '맞다'는 동사이기만 하다고 사전은 서술했다. 엄연히 형용사로 언어생활에서 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동안 하도 '맞다'가 왜 형용사가 아니냐고 항의가 빗발치니 드디어 '맞다'가 형용사이기도 함을 인정한 것인데 이를 바라보는 마음은 '기쁨'보다는 '분노'가 훨씬 크다. 2024년 1월에 들어 '맞다'에 형용사의 뜻이 추가된 게 아니다. 원래 '맞다'는 동사기도 했고 형용사기도 했다. 그랬지만 국어사전은 '맞다'는 형용사가 아니라고 했고 이제사 형용사가 맞다고 한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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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제까지 '맞다'는 형용사가 아니라고 한 것은 뭔가. 왜 지금 와서 '맞다'를 형용사라고 인정하는가. 지난 수십 년간 국어사전이 '맞다'를 형용사가 아니라고 한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 우매하고 멍청한 짓이었다. 그걸 지금이라도 바로잡은 것은 다행이긴 하지만 그동안 극구 형용사가 아니라고 뻗댄 것에 대해선 분노가 치밀지 않을 수 없다. 슬그머니 형용사 용법을 인정하는 데서 그칠 일이 아니다. 그동안 '맞다'는 형용사가 아니라고 한 데 대해서 진심 어린 사과 내지 사죄가 따라야 할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동안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횡포를 부렸는데 입을 싹 닦자는 겐가.


그런데 이렇게 내가 흥분해 보았자 그동안 '맞다'를 형용사가 아니라고 한 것에 대한 사과를 할 어문당국이 아니다. 그걸 잘 안다. 그래서 사과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마땅히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 할 게 뻔하다. 그런데 실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이번에 다행히 '맞다'의 형용사 용법을 인정했는데 이렇게 사전에서 잘못 처리한 게 어디 '맞다'뿐이겠는가 말이다. '맞다'야 이번에 수정을 해서 다행이지만 다른 잘못 처리한 것은 없을까. 왜 없겠나. 수없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 한 예로 '걸맞다'에 대한 서술을 들고자 한다.


지금 국어사전은 '걸맞다'의 용례를 다음과 같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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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맞다'가 형용사기 때문에 그 용례로 '걸맞은 옷차람', '걸맞은 신랑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나는 여기서 '걸맞다'의 품사가 '헝용사'라고 한 것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나도 '걸맞다'의 품사가 형용사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활용형이다. 형용사기 때문에 '걸맞'이라는 말을 용례로 제시했지만 난 '걸맞'이라는 말의 용례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왜? 사람들이 '걸맞은'보다는 '걸맞는'이라고 더 많이 쓰기 때문이다.


'맞다'의 품사로 형용사를 인정하는 데 몇 십 년이 걸렸다. '걸맞다'의 활용형으로 '걸맞는'을 인정하는 데는 또 몇 십 년이 걸릴지 모르겠다. 누가 사전 편찬자들에게 맞고 틀리고를 결정할 권한을 주었나? 좀 더 겸손해야 한다. 말의 주인은 언중이지 사전 편찬자들이 아니다. '맞다'를 형용사로 언중이 쓰면 사전도 '맞다'가 형용사라고 인정해야 하듯이, '걸맞다'를 '걸맞는'이라고 언중이 쓰면 사전도 '걸맞는'을 인정해야 한다. 그게 사전 편찬자들이 할 일이다. 내가 이렇게 핏대를 올리지만 '걸맞는'이 국어사전에 바른 용법으로 인정받는 데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물론 국어사전이 '걸맞는'을 인정하든 말든 상관 없이 난 '걸맞는'을 쓰겠지만 말이다. 어디 나만 그러겠나. 언중은 변함 없이 '걸맞는'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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