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약속이다
한 신문의 칼럼에서 '체제 결속용'이라던가라는 대목에 눈길이 미쳤다. 문맥상 분명히 '체제 결속용'이라든가라야 할 텐데 '던'인 데에 놀랐다. 칼럼 쓴 분은 70대 후반의 노기자인데도 '던'과 '든'의 구별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던'은 과거의 의미고 '든'은 선택이나 열거의 의미이므로 완전히 다른데도 잘 구별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다른 기사에서는 서울 대형 종합병원만 애정하는 정치인들이라는 구절에 눈길이 갔다. '애정하다'라는 말을 오늘 처음 본 것은 아니다. 전에도 남들이 쓰는 걸 본 적은 있다. 하지만 당장 내가 그 말을 쓰지 않을 뿐 아니라 이 말을 들은 지도 아주 오래되지 않았다. 옛날에는 없었던 말이다.
'애정하다'란 말은 대체 언제 출현하였을까. 추적하면 대략 연도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초의 출현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서였는지 알기란 간단치 않을 것이다. 어쨌든 '애정하다'는 은연중 제법 세력을 얻은 듯은 보인다. 하지만 난 이 말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왠지 거부감이 있다. 물론 그건 내 생각일 뿐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말에 친근감을 느끼고 있는 듯이 보인다.
'애정하다' 같은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역대급'이란 말도 나는 너무나 듣기 싫었지만 이젠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말은 거대한 파도와 같아서 그 파도를 혈혈단신으로 막아낸다는 건 돈키호테 같은 일이다. 받아들이는 수밖에... '낸다'는 뜻으로 '원서를 접수하다', '신청서를 접수하다'라고 하는 것도 같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싶다. '애정하다'가 아직 그 정도까진 아니어 보이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새로운 걸 끊임없이 추구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자꾸만 새말을 만들어낸다.
단어는 자꾸 만들어져도 문법은 다르다.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다음 기사를 읽고서는 몹시 뜨악하다.
'팽팽하던 승부는 PK가 깨졌다'니! 말인가 방구인가. 이건 용인이 안 된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리라. 이런 문장은 단순한 실수에 지나지 않는다. '팽팽하던 승부는 PK로 깨졌다'라고 하거나 '팽팽하던 승부는 PK가 깼다'라 해야 하지 않겠나.
말은 사회적 약속이다.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약속이라는 것이다. 그 약속에서 이탈하면 안 된다. 소통이 가로막히거나 지연된다. 물론 새로운 약속을 만들어내려는 움직임도 꾸준하긴 하다. '애정하다'가 과연 약속으로 인정받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