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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밭

체질이 있다

섭생의 중요함

by 김세중

'체질'이란 말을 실감했다. 엊그제 을지로 출판사에 갔다가 나와서 점심을 먹으러 퇴계로의 이름난 노포 식당에 들어갔다. 지난번에 갔을 땐 그 집에서 칼국수를 먹었는데 이번엔 좀 다른 걸 시켜보자 해서 '백반'을 주문했다. 아니, 먼저 직원이 "백반요?" 하고 묻길래 긍정했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고 보니 가관이다. 백반은 백반 맞다. 밥이 한 공기 딸려 나왔으니까. 그런데 반찬은 김치 한 가지뿐이고 국물이 든 냄비와 거의 한 마리인 듯싶은 닭고기가 쟁반에 얹혀 있었다. 닭고기를 냄비에 넣고 거기에 밥을 말아먹으라는 거였다. 그러니까 밥과 닭 두 가지가 식사의 핵심이었다. 거기에 김치 한 종지가 추가되었을 뿐... 백반이 이런 식인 건 처음 봤다. 생선이나 몇 가지 채소 반찬, 국 한 그릇과 밥 한 공기가 백반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대략난감이었다. 왜냐하면 닭고기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었고 딴 반찬은 없었으니 말이다. 하는 수 없이 닭고기 덩어리를 냄비에 넣고 거기에 밥을 말아서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저히 다 먹을 수 없었다. 좀 남겼다. 그리고 식당을 나왔다. 사무실 부근에 돌아오는데 속이 거북해짐을 느껴 마침 사무실 부근 사우나로 들어갔다. 목욕을 하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한 시간쯤 탕 속에 물을 담그고 나와서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사무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으니 본격적으로 속이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싶어 퇴근을 결심하고 사무실을 나와 근처 약국에 가서 속이 거북하다 하고 약을 받아먹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도 굶고 잠을 자고 이튿날 아침 일어났으나 여전히 개운하진 않았다. 그냥 하루 쉬기로 하고 종일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 그리고 수요일 아침에야 몸이 좀 가벼워짐을 느껴 출근했다. 굉장히 추웠지만 5km를 걸어서 지하철역까지 갔고 이제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얼추 돌아가지 않았나 싶다.


가족은 닭고기를 참 좋아한다. 아이들은 치킨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그런데 난 반대다. 웬만한 음식은 가리지 않는데 치킨만은 늘 별로다. 먼저 먹자고 하는 법이 없다. 할 수 없이 먹게 되면 먹을 뿐... 그런데 엊그제 점심엔 '이상한 백반'이 나왔을 때 물리치지 않고 (이미 내가 주문했으니까) 먹었으니 속이 탈 난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했으리라. 이게 체질 아니고 뭔가. 체질을 거스르는 거 좋은 결과를 부르지 않는다. 비싼 수업료를 치렀다. 나이가 나인 만큼 섭생이 중요함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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