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의 벽이 두텁다
이제 얼추 책이 완성 단계에 접어든다. 작년 8월부터 본격 집필에 들어갔다. 사전 자료 조사는 그 전 해부터 했고. 지난 11월말에 초고가 완성돼 편집에 들어간 지 거의 두 달이 가까워서야 교정까지 마쳤다. 그리고 어제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유통지원센터에 들어가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신청했다. 번호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바람 앞의 촛불처럼 끊임없이 흔들렸던 건 다름 아닌 책의 가격이었다. 페이지 수가 363쪽이 나왔다. 18,000원이 어떨까 하다가 16,000원이나 15,000원까지도 생각했다. 한때 거꾸로 20,000원도 고려했다. 그런데 최근에 252쪽에 불과한 책이 21,000원인 걸 보고 용기(?)를 얻어 22,000원으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국제표준도서번호를 신청할 때 책 값을 그렇게 써 넣었다.
하지만 350쪽이 훌쩍 넘는 두툼한 책인데 18,000원이 매겨진 책을 보니 또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22,000원은 너무 욕심부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직 시간은 있다. 발행일 이전까지는 가격을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놓고 내가 이렇게 갈대처럼 마음이 흔들렸던 적이 또 있었나 싶다.
가격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어떤 사람들이 주로 이 책을 사볼 것이냐일 것이다. 이번 책은 우리나라의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 등 국가 기본법이 주로 1950년대에 만들어지다 보니 낡디낡아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문장의 오류가 많고 단어도 듣도 보도 못한 것이 많으니 이를 그냥 두고 볼 거냐고 이 사회를 향해 토해 놓는 필자의 외침, 절규다.
따라서 가장 이 책에 주목할 만한 층은 법조인, 법학자들 그리고 법제처, 법무부, 국회의 관계자들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변호사만 3만 명이 넘고 검사, 판사가 각각 수천 명이다. 그러나 이들 중에 과연 얼마나 이런 책을 사보려 할지는 예상키 어렵다. "픽!" 하면서 "그런 줄 이미 다 알고 있는데 뭐..." 하지 않겠나. 아니, 그 이전에 워낙 업무에 치여 이런 일에 관심이나 갖겠나. 하지만 법조인 중에도 관심이 있는 이라면 책 값이 3만 원, 4만 원 하더라도 사볼 것이다. 법제처, 법무부, 국회 관계자들 역시 높은 가격에 별로 구애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난 그들이 이 책을 읽기를 그리 원치 않는다. 아직 법조인이 되지 못한, 법조인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로스쿨생, 법대 재학생 등이 우리 법조문의 실상에 대해 이 책을 읽고 알기를 더 원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 오류투성이 법조문의 생생한 피해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경제적으로 홀로 서지 못했기 때문에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고 봐야 한다. 그들을 의식한다면 될 수 있으면 저렴한 가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 예비 법조인만인가. 일반인도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알기 위해 혹 법을 찾아볼 일이 있어도 그 난해한 문장 때문에 이내 포기해버리는 게 현실 아닌가.
고민은 깊어가고 수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결정을 마냥 미룰 수는 없다. 내가 세상 일을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주독자층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 막막하다. 하나 분명한 것은 이 나라를 떠받치는 기둥인 국가 기본법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낡았고 국민이, 예비 법조인이 그걸 이해하는 걸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득권의 벽은 너무나 두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