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열흘쯤 후엔 책이 나오고 그 후론 제법 바빠질 듯하다. 세상과 꽤나 부딪칠 각오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법은 1950년대입니다>라니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며 눈이 휘둥그레질 사람들, 발끈할 사람들, 흥분할 사람들... 별별 사람들이 다 있을 것이다. 박수갈채를 보낼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모르겠다. 어쨌든 그때 불사를 전의를 다질 요량으로 장거리 도보 행군을 해 보았다. 이미 지난 12월 31일에 집에서 성북동까지 30km를 걸었고 얼마 전엔 역시 비슷한 거리를 걸었다. 오늘은 한층 강도를 높여 보았다. 제1안은 창동역까지, 제2안은 서울-의정부 경계까지, 제3안은 의정부부대찌개거리까지로 목표를 잡고 아침 6시 37분 캄캄한 어둠 속에서 집을 나섰다.
어둠은 시시각각 걷히기 시작했다. 금천구청역, 독산역을 지나니 환했다. 가산디지털역에서 남구로, 대림을 지나 신도림역, 영등포역, 신길역, 대방역, 노량진역, 노들역을 차례로 지났다. 그리고 한강을 건넜다. 이렇게 긴 거리를 걷는 게 세 번째인데 오늘이 가장 날씨가 좋았다. 며칠 동안의 맹추위가 물러가고 포근한 기운이 느껴졌다. 신용산역을 지날 때 21km였다. 삼각지를 지나 서울역에 이르렀고 남대문을 지날 무렵 전화가 울렸다. 신청해둔 갤럭시S24울트라를 받으러 오라는 대리점 직원의 연락이었다. 될 수 있으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곳은 성신여대역 앞이었는데 2시 반에서 3시 사이에는 갈 수 있겠다고 답했다.
마음이 바빠졌다. 점심을 을지로3가의 노포 중국집 오구반점에서 먹기로 했는데 거기서 부리나케 점심을 먹고 부지런히 걸으면 성신여대역에 3시까지 빠듯하게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과연 그랬다. 오구반점에서 볶음밥과 물만두를 주문해 후딱 먹어 치웠고 다시 부지런히 걷기 시작해 돈화문, 혜화동로터리를 지나 성신여대역에 2시 50분께 도착했다. 32km를 걸은 걸로 앱에 나와 있었다.
전화기 교체에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어쩌다 보니 자리에서 일어설 때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임시폰에 있던 데이터를 새 폰으로 옮기는 데 꽤 시간이 걸렸고... 어쨌든 뜻하지 않게 한 시간이나 폰 대리점에서 보냈지만 한편으론 귀중한 휴식을 그곳에서 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임시폰을 반납하고 새 폰을 받아서 나왔는데 임시폰에 기록 중이던 오늘의 운동 기록을 저장하는 걸 깜빡 잊어버렸다. 임시 폰에 있던 데이터를 새 폰에 다 옮기긴 했지만 오늘 기록 중이던 앱의 기록은 그만 지워져 버려 새로 받은 폰에 옮겨지지 않았다. 대리점에 도착했을 때 32km였다는 기억밖에는 없었다.
이미 상황은 끝났고 하는 수 없이 새로 받은 폰에서 다시 스포츠트래커 앱을 작동했다. 그리고 미아리고개를 넘었다. 길음역, 미아사거리역, 미아역, 수유역, 쌍문역을 차례로 지났다.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제2안, 제3안은 물 건너갔고 그저 1안인 창동역만 가능할 뿐이었다. 계획을 살짝 틀어 노원역까지 간 뒤 오늘의 걷기 일정을 마치기로 했다. 그러자면 창동역을 지나야 하는데 그만 길을 놓쳐 버려 엉뚱하게 방학사거리까지 갔고 뒤늦게야 이를 알고 상계교를 건너 결국 노원역까지 가긴 했다. 이미 캄캄했고 아침에 출발한 지 12시간 40분이 지나 있었다. 점심에 중국집에서 점심 먹느라 20여 분, 성신여대 앞 폰 대리점에서 1시간, 수유역 부근서 간식 먹느라 20분 등을 제하면 실제 걸은 시간은 11시간이었다. 성신여대부터 노원까지는 12km였고 그래서 총 거리는 44km였으니 평균 속도 4km였던 셈이다.
옛사람들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10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라 노래했다. 님을 버리고 가지 않아서인가. 110리를 걸었지만 발병 나지 않고 무난히 걸었다. 오랜만에 극한 상태로 몸뚱이를 몰아넣어 보았다. 삭신이 쑤실 정도는 아니지만 종아리는 제법 얼얼하다. 하루 44km는 처음 걸어보는 거리였지만 무사히 일정을 마쳐서 다행이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맞서 싸울 마음의 태세는 다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