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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훼법?

굳이 이런 말을 써야 하나

by 김세중

바야흐로 아시안컵축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단 네 팀만 남았고 한국은 그중 한 팀이다. 오늘 밤 한국은 요르단과 결승 진출을 놓고 일전을 치른다. 이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그 기사에서 낯선 단어를 보고 몹시 뜨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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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습에 대한 뚜렷한 파훼법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파훼법'이란 말이 눈길이 절로 갔다. 잘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파훼'라는 말은 어디서 본 듯도 하다. 부수고 훼손한다는 뜻 아니겠는가. 그러나 축구 경기에 대한 분석 기사를 쓰면서 이런 말이 굳이 필요했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역습에 대한 뚜렷한 파훼법'이라 했는데 그냥 '역습에 대한 뚜렷한 대비책'이라고 하면 알기 쉽지 않았을까. 왜 '대비책' 같은 쉬운 말을 놓아두고 굳이 '파훼법' 같은 생소한 말을 써야 했을까.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도대체 '파훼법'이란 말은 국어사전에 있기나 할까. 궁금해서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파훼법'은 없고 '파훼'와 '파훼하다'만 있었다. '파훼'는 '깨뜨리어 무너뜨림', '파훼하다'는 '깨뜨리어 무너뜨리다'라 뜻풀이되어 있었는데 용례가 제시되어 있지 않았다. 용례가 없다는 것은 잘 쓰이지 않는 말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우리말샘에는 '파훼법'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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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전술이나 전략을 깨뜨려 무너뜨리는 방법'이 파훼법이라는 것이다. 이미 2016년에 이런 말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선례를 따라 이번 기사에서 '파훼법'이란 말을 썼으리라 짐작되지만 본받지 않아도 좋은 말을 따라 쓴 게 아닌가 싶다.


'파훼'란 말은 실은 민법에 나온다. 1958년에 제정된 민법의 제1110조는 이렇다.


제1110조(파훼로 인한 유언의 철회) 유언자가 고의로 유언증서 또는 유증의 목적물을 파훼한 때에는 그 파훼한 부분에 관한 유언은 이를 철회한 것으로 본다.


민법 제정 당시에는 한자를 썼고 '破毁한'이었다. 유언증서를 알아보지 못하게 훼손한 것을 그렇게 표현했다. 아마 지금 민법을 만든다면 '파훼한'이라고 하지 않았을 것 같다. '훼손한'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못 쓰게 훼손한' 또는 '알아보지 못하게 훼손한'이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요컨대 '파훼하다'는 오늘날 잘 통하지 않는 말이다. 법률 조문에 쓰이던 '파훼하다'가 2000년 이후에 축구 경기에 관해 언급할 때 쓰이고 있다는 게 놀랍다.


'파훼하다', '파훼', '파훼법'은 다분히 낡은 옛날 어투 말이다. 21세기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체육 담당 기자가 무슨 생각에서 이 말을 썼는지 모르겠으나 이런 케케묵은 느낌의 말을 쓰는 것에 찬성하기 어렵다. 고급스러운 표현을 찾아 쓰는 것은 말릴 일이 아니지만 고급스러움을 넘어서 현학적이고 고답적인 느낌을 준다면 말리고 싶다. 신문 기사는 중학생 정도만 돼도 읽을 수 있어야 마땅하다. 더구나 스포츠 기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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