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밭

번역 좀 바로 할 수 없을까

희한한 '존중'

by 김세중

아시안컵 축구가 온 국민을 허탈하게 했다. 64년 만의 우승을 간절히 바랐지만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그런데 경기 내용이 너무 형편없다. 공격다운 공격을 해보지 못한 데다 수비는 공을 뺏기기 일쑤였다. 한마디로 무기력하고 허망하게 준결승에서 졌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언론 보도에서 더욱 허탈함을 느꼈다. 두 가지 때문이다.


4강전 상대인 요르단은 피파 랭킹 87위고 한국은 23위다. 무려 54 계단 차이다. 그런데 경기 전 요르단 감독이 자국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 신문이 보도했다.


h_225Ud018svc1fpac4tnyaclw_hgt0e.jpg


"한국을 너무 존중하지 말라."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요르단 감독은 선수들에게 아랍어로 말했을 것이다. 그걸 어떤 외신이 영어로 번역했을 것이고 이 기사를 쓴 한국 기자는 그걸 다시 한국어로 번역을 했을 것 같다. 아랍어로 도대체 뭐라 했고, 영어로 뭐라 돼 있었기에 "한국을 너무 존중하지 말라."라 번역을 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한국을 너무 존중하지 말라."는 한국어로는 도무지 해석이 되지 않는다. 한국을 너무 봐주지 말라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뜻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요르단 감독이 그런 뜻으로 말했을 것 같지 않다. 봐주지 말라니! 상대를 봐주려는 선수들이 어디 있겠나? '봐주지 말라'가 아니라 '두려워 말라', '쫄지 말라', '겁먹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게 왜 '존중하지 말라'로 둔갑했나?


번역이란 원래 어려운 작업이다. 도저히 번역이 불가능한 말도 있다. 그래서 번역가의 작업은 힘들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래도 가장 가깝고 그럴듯한 번역이 있고 그걸 찾는 게 번역자의 임무다. 그러나 기자는 참 이상하게 번역했다. "한국을 너무 존중하지 말라."라는 말은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어이없다.


이번엔 '존중'과 관련된 다른 기사가 또 나를 당황케 했다. 요르단과의 준결승전에서 허망하게 한국이 패했음에도 경기 후 한국팀의 클린스만 감독은 침통한 표정은커녕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기자들이 왜 그랬느냐고 묻자 이에 대해 클린스만은 '상대에 대한 존중'으로 그랬다고 답했단다. 상대에 대한 축하의 뜻으로 미소지어 보였다는 뜻 같은데 클린스만은 상대 팀만 존중하고 대한민국 국민은 존중하지 않나? 그는 거액의 보수를 누구로부터 받나? 클린스만이 독일어로 그 말을 했는지 영어로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표현이 뭐였는지 궁금하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도 좋지만 먼저 본인이 몸 담고 있는 팀과 그 나라에 대한 배려는 생각이 없나.


아시안컵에서 초라한 성적을 받아보아 씁쓸하지만 이에 얽힌 언어 표현을 접하면서도 맘이 편치 못하다. 무릇 말은 뜻이 분명해야 한다. 번역을 할 땐 특히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한다. 선수는 최선을 다해서 경기에 임함으로써 승패를 떠나 관중과 국민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고 기자는 가장 명료한 표현을 써서 보도함으로써 독자에게 정확하게 사실을 전달할 수 있다. 그게 기자의 의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파훼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