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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밭

웬수와 원수

사전은 언어 실태를 그대로 보여주어야

by 김세중

한 기사 안에서 '웬수'와 '원수'가 동시에 쓰였다. 웬수는 뭐고 원수는 뭘까? 왜 웬수라 했다가 원수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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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은 뭐라고 하는지 궁금해서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웬수'는 아예 없었다. 우리말샘에 들어가서 '웬수'를 넣어보니 '원수'의 방언이라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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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수'는 '원수'의 방언이라며 강원, 경기, 경상, 전남, 충북의 방언이라 했다. 그렇다면 빠지는 지역은 전북과 충남, 제주도만이다. 과연 전북과 충남, 제주도에서는 '웬수'를 쓰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전북, 충남, 제주도만을 제외한 전국에서 다 쓰이면 '웬수'는 전국 거의 모든 곳에서 쓰이는 말이니 표준어라 할만하지 않을까.


국어사전의 방언에 관한 기술을 신뢰하지 않는다. 무엇에 근거해서 어떤 말이 어느 어느 지역의 방언이라 하는가. 조사를 하고서 그렇게 기술했나. 그렇게 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저 다른 국어사전에서 기술해 놓은 것을 옮겨 놓았을 뿐일 것이다. 참 손쉬운 방법이다. 실태는 따로 있다.


'웬수'와 '원수'는 방언과 표준어의 차이가 아닌 듯하다. 다른 차이가 있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웬수'는 다분히 구어적이고 '원수'는 문어적이다. 입말에서는 '웬수'를 주로 쓰고 글말에서는 '원수'를 주로 쓰지 않는가 싶다. 대화상에서 못마땅한 상대를 가리켜 말을 내뱉을 때 "저 웬수!" 하는 게 보통이지 "저 원수!" 하는 걸 들어봤나. 거의 습관적으로 "저 웬수!" 할 것이다.


그리고 '웬수덩어리'라고는 해도 '원수덩어리'라고는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웬수덩어리'도 입말에서 쓰지 글을 쓸 때는 잘 안 쓴다. '웬수덩어리'든 '원수덩어리'든 말이다. 우리 국어사전은 구어와 문어의 차이를 제대로 포착하지 않고 있다. 구어와 문어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글을 쓸 때는 '그리고' 하지만 입으로 말할 땐 '그리구'라 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데 이런 차이를 국어사전은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국어사전은 언어 실태를 면밀하고 예리하게 관찰하여 있는 그대로 기술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국어사전은 그런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런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조차 없어 보인다. 그저 손 놓고 가만 있는 듯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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